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또는 조울증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리튬은 오랫동안 신경정신의학에서 중요한 약제로 자리 잡아왔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건강 강장제로 광고되기도 했으며, 청량음료 ‘7-Up’의 초기 레시피에 포함되었던 사실은 흥미롭다. 현재까지 리튬은 조증의 빈도와 강도를 낮추는 표준 치료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리튬이 전혀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뇌의 자연 리튬 저장량을 보충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심지어 진행을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가 2025년 8월 6일자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것이다. 논문 제목은 “Lithium deficiency and the onset of Alzheimer’s disease”로, 인간 뇌 조직 분석과 동물 실험 모두에서 일관된 결과를 제시했다.

뇌 속 리튬 결핍과 치매
연구에 따르면 뇌의 리튬 농도가 낮아질 경우 기억 상실, 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 타우 단백질 엉킴 등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 병리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경도인지장애(MCI) 환자의 뇌에서는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리튬 이온을 격리시켜 뇌 기능에 필요한 리튬이 부족한 현상이 관찰됐다. 이 결핍은 질병이 진행될수록 심화되었고, 리튬이 부족한 뇌는 더 많은 플라크를 생성해 악순환이 이어졌다.
연구팀은 또한 알츠하이머병 쥐 모델에서 리튬 수치가 낮을수록 병리 현상이 두드러지고, 반대로 특정 형태의 리튬 보충제(Lithium orotate)를 투여했을 때 신경학적 변화가 되돌려지며 기억력이 회복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단순한 예방 차원을 넘어 질병의 역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기존 치료와의 차별성
현재 시판 중인 항아밀로이드제는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추지만 기능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하버드 의대의 유전학자이자 이번 논문의 주저자인 브루스 얀크너(Bruce Yankner)는 “우리는 아직 알츠하이머병의 페니실린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리튬 접근법은 아밀로이드 플라크뿐 아니라 타우 엉킴 등 알츠하이머병 전반의 병리 기전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호주 멜버른대의 신경과학자 애슐리 부시(Ashley Bush)는 “이 연구가 임상에서 확인된다면 의미는 엄청날 것”이라며 “리튬은 알츠하이머병의 모든 주요 병리를 겨냥하는 드문 후보”라고 강조했다.
리튬의 오래된 단서들
리튬은 이미 1970년대부터 양극성 장애의 황금 표준 치료제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리튬을 장기간 복용한 환자의 뇌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노화 속도가 더뎠다. 또한 역학 연구에서는 물에 미량의 리튬이 포함된 지역에서 치매 발생률이 낮은 경향이 보고되기도 했다. 다만 리튬의 인지 기능 개선 효과를 확인하려는 임상시험은 지금까지 엇갈린 결과를 보여왔다.
얀크너 연구팀은 뇌에서 리튬이 단순한 약물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건강한 부위에 비해 리튬 수치가 낮았으며, 이는 플라크에 리튬이 갇혀버리기 때문이었다. 결국 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리튬의 공급이 차단되는 것이다.
리튬 보충의 새로운 접근
이번 연구가 주목한 점은 리튬의 ‘형태’였다. 그동안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탄산리튬(Carbonate lithium)을 사용했는데, 이는 아밀로이드 플라크에 쉽게 포집되는 특성이 있었다. 반면 리튬 오로테이트(Lithium orotate)는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저용량의 리튬 오로테이트를 투여한 쥐에서 뇌 손상이 되돌아가고 기억력이 회복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차이는 과거 임상시험의 엇갈린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평가된다. 물론 쥐에서의 결과가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진은 “다양한 증거가 모여 신중한 낙관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혔다.
임상 시험과 과제
현재 남은 과제는 임상 시험이다. 다행히 연구에서는 장기간 리튬 투여에도 독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따라서 임상 적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문제는 자금 지원이다. 리튬은 자연 원소이므로 특허를 받을 수 없어 제약사가 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캐나다 달하우지 대학의 정신과 의사 토마스 하지크(Tomas Hajek)는 “리튬은 엄청나게 저렴하지만 그만큼 기업 유인이 적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적 혜택은 크다. 인지 장애가 없는 일반인에서도 리튬 수치가 높은 사람이 더 나은 기억력 점수를 보였으며, 리튬 오로테이트는 수면과 정서 안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있다.
규제와 사회적 논의
문제는 리튬 보충제가 규제의 벽에 막혀 있다는 점이다. 미국 등에서는 건강보조제로 쉽게 구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문제로 접근이 어렵다. 이는 ‘국민 건강을 위한 규제 완화’라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는 만큼, 저용량 리튬 보충제가 치매 예방 및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한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리튬은 오랫동안 정신의학에서 검증된 약물이었지만, 이제는 알츠하이머병 예방과 치료의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의 본질적 병리 과정을 겨냥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아직 임상시험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지만, “리튬 보충”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접근법은 세계 5,500만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