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류: 아침 연지에서] 다시 이별 연습

마지막 연꽃 <사진 이병철>

오늘 8월 29일, 팔월이 아직 이틀 남았다. 오늘따라 아침 연지의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하늘빛도 곱다.
연지에는 지금도 뒤늦게 꽃대를 밀어 올리는 연꽃들이 있다. 그 꽃들도 모두 환하게 눈부시다.

오늘 아침 연지에서 늦게까지 남아 꽃대를 올리고 있는 연꽃들과 마주하며, 올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아직 여름이 다하지 않았고, 이 연지에 피어나는 연꽃들도 남아 있는데, 이리 작별의 인사를 앞서 하게 된 것은 오늘부터 잠시 숲마루재를 떠났다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아오면 이미 9월도 중순에 접어들 것이고, 그때는 이 연지의 마지막 연꽃도 이미 그 꽃잎을 떨구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여름, 예년보다 더 무덥던 그 폭염에도 이 여름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날마다 아침 연지에서 연꽃과 만나는 기쁨과 그 고마움 덕분이었다. 아침마다 연꽃과 마주하면 절로 가슴이 설렜다. 날마다 이리 맑고 고운 꽃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연꽃의 향기는 또한 얼마나 맑고 그윽한가. 지상에 핀 천상의 꽃이라는 이 처염상정의 연꽃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과 혼도 따라서 맑고 향기로워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연꽃 <사진 여류 이병철>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세상 속에 깃들어 살더라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으면 했던 내 바람처럼 비록 그리 살지는 못했지만, 그런 연꽃과 날마다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폭염의 8월이 가고 구월로 접어들어 마침내 이 연지에도 바람빛이 맑고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을 때, 마지막 꽃대를 밀어 올렸던 그 연꽃이 마지막 남은 꽃잎을 떨굴 때까지 나는 이 연지에서의 작별을 미루고 싶었다.
그러나 이별 또한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이 연지에 피고 있는 연꽃이 남아 있는데도 서둘러 작별의 인사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이 연지의 연꽃과 마지막 만남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오늘 만난 연꽃들이 유난히 더 깊게 다가왔다.
환한 아픔과 상큼한 이별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이별에는 언제나 애틋한 아픔이 함께한다. 오늘 아침 연지에서 만난 이 연꽃들을 가슴에 품고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때도 우리가 이 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 환한 미소로, 더 벅찬 설렘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지난해 이 연지에서 마지막 이별을 하며 나누었던 그 시를, 올해의 작별 인사로 다시 나눈다.

마지막 연꽃 <사진 이병철>

다시 이별 연습

이 순간을 지나면
남은 것은 기억의 조각뿐,
삶이란 단지 기억을 짓는 일인가.
어제 나는 유서를 썼고
오늘 너의 조사를 쓴다.

사랑하는 이여, 너를 보낸 뒤
기억의 조각 모아 이별을 노래하는 건
네 사랑에 대한 내 사랑이 아니다.

나는 목이 메고 숨결이 가빠
다만 너의 이름을 부를 뿐.
애써 하늘을 본다.
거기에서도 너의 미소 피어 있다.

보낸다는 건
남은 기억을 마저 지우는 일인가.

상큼한 이별을 꿈꾸던 이여,
긴 이별에는 다시 연습이 필요하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