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인 청소년은 므낫세였다’
시끌벅적 하루 수업을 마친 아이들 사이로, 분주한 일곱 명이 음향 장비가 있는 곳으로 모인다. 다른 아이들은 하루의 일과를 서로 위로하듯 깔깔대며 교실을 나서 학교 버스에 오른다. 예전엔 교회 본당으로 사용되던 다목적 공간은 이제 7월 캠프를 위한 찬양단의 연습 무대가 되었다. 찬양단 아이들은 능숙하게 음향 준비를 마치고, 구경하는 아이들 네 명이 옆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준비가 끝나자,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찬양 연습이 시작된다. 10인조 찬양팀의 반주가 스피커 속에서 흘러나오며 아이들을 은혜로 자극한다. 완벽한 반주 음악이다. 유튜브에서 재생되는 실제 라이브 밴드의 소리다.

한국 찬양을 부를 땐 원곡 보컬 소리를 최대한 제거하여 우리 찬양단만의 반주로 사용한다. 나는 유튜브 편집이 서툴지만, 아이들은 능숙하다. 물론 원래의 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순 없지만, 최대한 줄여 반주에 맞춰 부른다. 서툰 한국어지만 아이들은 이미 입을 맞춘다.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찬양단 몇몇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은혜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찬양 연습은 두 달 동안 방과 후 꾸준히 이어졌다. 찬양단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영적 훈련이다.

긴장감이 감돈다. 다른 아이들은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었지만, 찬양단 아이들의 얼굴에는 이미 상기된 기운이 감돈다. 캠프 첫째 날, 드디어 찬양 무대에 오른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그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오직 기도뿐.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기도한다. 지금부터는 영적 전쟁이라며, 하나님만 생각하며 찬양하라고 가르친다. 캠프에 처음 참여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소극적인 이들을 향해 무대에서 찬양하는 건 더욱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감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무장한 우리는 리허설을 시작한다. 나는 무대 앞에서 가장 큰 소리로 찬양하며 기도한다. 찬양단 아이들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리허설을 마친다. 어느새 삼삼오오 자리를 잡는 아이들. 캠프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드디어 첫 찬양의 반주가 흐른다. “예수 우리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나는 맨 앞에서 기도한다. ‘주님, 아직 주님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지금 이 찬양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해주십시오.’ 성령의 인도 속에 나도 찬양에 빠져든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스친다. 아이들이 잘 따라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믿음 없는 기우였다.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놓고, 의심하는 나를 회개하며 찬양 소리에 다시 몰입한다. 러시아어로 찬양하는 아이들, 서툰 한국어로 따라 부르는 아이들, 율동을 재미있게 따라 하는 아이들까지 모두 함께 찬양한다. 이미 은혜가 임했고,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만나고 있다. 마지막 찬양과 함께 기도로 마무리한다.
조명이 켜지고,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얼굴에는 기쁨과 평안이 담겨 있다. 이제 말씀으로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번 비전 캠프의 주제는 ‘회복’이다. 캠프를 준비하며 나에게 주어진 큰 과제 하나는 설교였다. 한국어가 서툴기에 매번 설교를 영상이나 PPT로 제작해야 했다. 통역 선생님이 있긴 하지만, 직접 설교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3년 전 이곳에 학생으로 입학했던 알리나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매우 꼼꼼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고, 나는 ‘서쪽(우크라이나)에서 빛나는 별’이라는 뜻으로 ‘서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후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과정을 마치고 TOPIK 6급을 취득한 그녀는 정식으로 채용되어 지금은 나와 함께 교사로 동역하고 있다. 예배 통역도 2년째 맡고 있다. 오늘 말씀은 이서현 선생님과 아이들이 교독으로 함께 읽는다.

“상처를 회복시키는 하나님”
창세기 41장 51절: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게 하셨다 함이요.’
고려인 청소년들도 요셉처럼 원치 않는 이주의 경험을 가졌다. 이들의 한국 이주는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 부모와 이별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진다. 고려인 부모들은 먼저 한국에 와서 자리를 잡고, 나중에 자녀를 부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자녀를 부르기까지 5~6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아이는 일곱 살 때 부모와 헤어진 후 10년을 떨어져 살다가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으로 한 달 만에 한국에 오기도 했다. 정체성과 자존감이 흔들린 시기에 겪는 이주는 기대와 상처를 동시에 품고 온다. 아이들은 한류를 통해 막연한 기대를 품지만, 한국에 와보니 부모는 이혼했고, 새 가정과 새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많다. 충격적이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그들은 부모와의 오랜 단절, 한국 생활 적응에서 오는 언어적 장벽, 문화적 차이, 차별의 경험 속에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사춘기 시절 이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고려인 청소년들이 비전 캠프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 회복된 삶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품길 바란다. 아이들은 주님의 손길로 상처를 치유받기를 원하고, 아직 믿지 않는 아이들에겐 오직 주님만이 치유자임을 전한다.
기도 시간. 아이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연다. 상처를 회복하는 최고의 약은 용서다. 주님의 마음으로 용서의 약을 복용하듯, 아이들은 울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달려가 안아주고 싶고 함께 울고 싶지만, 꾹 참는다. 그리고 미리 받아둔 부모님의 영상 편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캠프를 앞두고 부모님께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진심 어린 말을 1분 이내 영상으로 부탁드렸고, 편집한 영상들이 상영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용서의 눈물이 더욱 쏟아진다. 눈물의 바다 속에서 서로 손을 잡고 위로하며 집회장은 성령의 임재로 가득 찬다. 나는 한 명씩 안수하며 축복 기도를 올린다. 눌려 있던 상처가 씻겨 나가고, 나 역시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운다.
이 안수와 축복의 시간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다. 주님께서 나와 아이들을 만져주시는 이 순간, 고려인학교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은혜의 여름밤 속에서 비전을 디자인하며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