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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래퍼 바바르 망기가 그의 뿌리 신드에 바치는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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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라훌 아이자즈 파키스탄 영화감독, 작가] 파키스탄 신드 주를 대표하는 래퍼 중 하나인 바바르 망기(Babar Mangi)는 신드 주의 도시 수쿠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코카콜라가 기획한 프로그램 코크 스튜디오(Coke Studio)에서 ’Aayi Aayi’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기는 유년기까지만 해도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일찍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10대 초중반부터 여러가지 일을 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그래픽 디자인도 하면서 어느 정도 돈도 벌어봤다. 언젠가 레코더를 사서 가사 쓰고 녹음도 해보며 랩뮤직에 흥미를 느꼈다. 비트를 찍고 믹싱까지 해봤지만 음악은 직업이 아닌 취미에 가까웠다.”

망기는 전업 뮤지션를 꿈꾸지 않았다. 대신 영화제작자를 꿈꾸며 고향보다 더 큰 도시인 신드 주의 주도 카라치로 향했다. 지역의 명문 대학인 SZABIST까지 입학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영화인의 길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트장에서 30시간씩 머물러야 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창작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영화제작 환경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정신차리고 보니 영화 관련 수업보다 음악 관련 수업을 더 많이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학도로서 보내온 세월들 덕분에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제작하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향을 떠나 타지의 전문학교까지 입학할 정도로 굳은 결심이었지만 결국 영화 대신 음악, 그리고 힙합을 선택했다. 망기는 랩을 할 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양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힙합은 나 자신을 표현하기 좋은 장르다. 랩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도 존중하는 장르다. 랩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뱉을 수도 있었다. 힙합 안에서는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힙합은 단순히 시스템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저항하는 장르다. 내 안에 내재돼 있는 솔직한 모습과 나약한 모습들이 음악을 통해 표현된다.”

수쿠르에서 카라치로 이주했지만 망기의 터전은 여전히 신드 주다. 신드 주 출신이기에 가사의 거의 대부분이 신드어로 쓰여져 있다.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파키스탄 문화예술의 주류가 우르드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점을 고려하면 ‘신드어 랩’은 무모한 시도와도 같았다. 그가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카라치에선 신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까지 존재했다. -카라치는 파키스탄 전역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도시로, 외지인들이 신드어를 사용하는 토착민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편집자

“신드어로 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곤 했다. 신드 주 출신이지만 우르드어로만 작업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게 더 잘 팔리니까. 자신의 문화를 믿지 않는데 그 문화가 자라날 수 있을까? 신드 문화는 세상에 알려진 것 보다 알려져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신드 기반의 예술을 계속하다 보니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나오더라. 이제 막 출발점에 올라섰지만 사람들이 신드 문화에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망기는 그 누구보다 신드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신드 주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신드는 수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예술문화 분야에서는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신드는 수십년간 이어진 공권력의 부정부패와 지역 차별, 불안정한 치안과 빈곤의 심화로 얼룩져 있다. 이 시대의 신드는 존경받을 만한 위인이나 업적도, 후대에 전해줄 이야깃거리조차 없다. 망기는 이러한 현실마저 예술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

“사회에 비난과 갈등이 만연해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자랑스러워할만한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문화는 수천년을 넘나드는 전설적인 문인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문화들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 문화예술을 담는 그릇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신드어 기반의 아티스트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포티파이에 등록된 신드 아티스트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분명 수요는 있다. ‘Ho Jamalo’라는 신드 민요가 유튜브 조회수 3천만을 넘어선 적이 있다. 그 많은 수가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는 창작을 계속해야만 한다. 알고리즘을 뚫고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말이다.”

래퍼이자 프로듀서로서 망기의 커리어는 순탄했다.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통해 스펙트럼을 넓혔고 대중의 호응도 얻었다. 특히 그와 여러 차례 작업했던 암자드 미라니(Amjad Mirani)와의 콜라보는 그의 음악에 깊이를 더했다.

“나는 유머러스한 가사를, 미라니는 지적이고 문학적인 가사를 쓴다. 올해 초 미라니와 함께 발표한 ‘Busin ja Dhika’가 발매 직후 바이럴을 타고 남아시아 지역과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제목 그대로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동네 버스에서 밀치고 끼어드는 혼잡한 상황을 풀어냈다. 삶의 굴곡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는데 미라니와의 호흡이 잘 맞아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2025년 7월 중순, 망기는 사히반(Sahiban), 무함마드 마수드(Muhammad Masood)와 함께 작업한 싱글 ‘Sanam Sopari’를 발표했다. 타르파르카(Tharparkar) 사막 지대를 배경으로 한 이 곡은 지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신드에 헌정하는 찬가처럼 울려 퍼진다.

‘Sanam Sopari’에는 5천여년 전 인더스 문명 때부터 사용됐던 관악기 ‘보린도'(Borindo)와 전통혼례에서 여성들이 손뼉을 치며 부르는 민요 ‘세라’(Sera)까지 지역의 전통 문화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맡은 임란 발로치(Imran Baloch)는 타르파르카의 이색적인 풍광과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포착한다.

망기는 사랑과 평화, 자기성찰, 그리고 신드 주의 현실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망기는 그 위에 유쾌한 바이브를 얹으며 청자의 기분을 돋군다. 신드 주는 물론 전 세계에 분포돼 있는 디아스포라들이 그의 음악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엔 영어판: Mangi on the Mic: Bringing Sindhi Rap to the World – THE A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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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

기자, 파키스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rahulaijaz@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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