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이충재 칼럼] “이재명 정부 ‘의원 낙마 제로’ 관행 넘어서라”

강선우 이진숙 후보자(왼쪽부터)

대통령실이 선뜻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결정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는 ‘현역 의원 불패’ 신화의 그림자도 있을 것이라 본다. 수십 년간 이어진 관행을 이재명 정부가 앞장서 깼을 때의 부담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한 번 둑이 터지면 그다음은 좀처럼 막기 어렵다. 현 정부에서 줄줄이 예정된 인사청문회에서 현역 의원 탈락이 물밀 듯 밀려오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현역 불패’는 국회의 유구한 전통이다.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탈락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의원들은 자랑스러워할지 모르나, 그 내막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여야가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공동의 이해가 걸린 일에는 어깨를 겯고 의기투합했던 장면을 허다하게 목도한 터다. 정권이 바뀌면 나도 장관이 될지 모르는데, 기를 쓰고 상대당 후보를 낙마시켜 후환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컸을 것이다.

자격 시비가 들끓는 두 후보 청문회 풍경만 해도 그렇다. 현역 의원인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감싼 태도와 교수 출신인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대하는 기류가 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강 후보자에 대해선 보좌관들의 사과로 어물쩍 넘어가려 했지만, 이 후보자의 부실한 답변엔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능력 부족을 지적하긴 했지만, 강 후보자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지 못했다.

청문회 무사통과는 그들의 도덕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매년 재산 신고를 하고 지역구민들로부터 수시로 검증받는 만큼 다른 직종보다 깨끗하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의원들의 재산 내역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사각지대’라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몇 년 전 국민의힘 한 후보는 재산을 16억 원이나 축소 신고했는데도 ‘착오’라는 해명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경우도 채무 상환 과정에서 자금 출처 논란이 있었지만, 야당 의원들도 출판기념회를 준비 중인 상황이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2000년 청문회 도입 후 의원 낙마 없어
여야 봐주기 풍토가 만든 잘못된 신화
이 대통령, 시대착오적 신기루 깨기를

이재명 정부 1기 내각의 현역 의원 후보자들이 받고 있는 여러 논란도 마찬가지다. 농지법 위반, 편법 증여, 부동산 투기, 음주운전, 이해충돌 등 청문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의혹이 빠지지 않는다. 관료, 법조인, 의사, 기업인 출신 후보자들에게 제기되는 의혹과 다를 바 없다. 의원들에 대한 검증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이 비리나 의혹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의원들의 청문회 무사통과는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만 특권이 아니다. 장관 후보로 지명만 되면 청문회는 통과의례가 된 것 역시 특권이다. 이번 조각 인사에서 현역 의원들이 무더기로 장관 후보에 오른 것도 엄연한 특권에 해당한다. 모든 공무원에게 제한되는 타 직종과의 겸직이 허용되는 유일한 이들이 국회의원이다.

이 대통령이 현역 의원들을 대거 장관에 기용한 데는 업무 효율성 측면이 크겠지만, ‘현역 불패’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신속한 내각 인선으로 빠르게 성과를 내려는 조바심이, 검증 허들이 낮은 정치인을 기용하는 판단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잘못된 관행을 부여잡으려다 정권의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을 줄 아는 용기다.

이렇게 된 마당에 이 대통령은 역발상을 했으면 한다. ‘현역 불패’라는 그릇된 신화를 깬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건 어떻겠느냐는 얘기다. 지금 민주당도, 대통령실도 이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 역대 정부의 내리막길은 “밀리면 안 된다”며 민심에 맞섰을 때부터 시작됐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한 발 물러서는 것은 결코 ‘밀리는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이참에 시대착오적인 ‘의원 불패’의 신기루를 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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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언론인,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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