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정일의 시선] “나, 지금 뭐하고 있나? 그렇게 살아선 안 되잖아!”

나는 무기력해질 때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찾는다. 한 줄 한 줄 읽으며 그 매서운 겨울 들판 같은 문장들 속에서 마음이 서늘해진다. 특히 1981년 8월, 안기부 지하실에서의 고문과 고통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지금 너무 편안한 것이 아닐까?’ ‘내가 고통이라 여기는 것이 정말 고통인가?’

“죄수들은 죄 없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무고한 사람은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폭염으로 정기답사를 미루고 집에 머물며, 마음이 편치 않다. 눈보라에도, 폭우에도 개의치 않고 길을 나서던 예전이 그리워진다. 집이 어느 순간 안락한 도피처가 아니라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인간은 경험한 것만큼만 쓸 수 있다.” 니체의 이 말을 가장 잘 증명한 인물 중 하나는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다. 그는 20대 중반에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젊은 성공은 그를 자만하게 만들었다. 반체제 활동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대에까지 올랐지만, 황제의 특사로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그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10년간 수형생활을 하며 인간의 삶과 고통, 존재의 의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체험은 <죽음의 집의 기록>으로 남았다. 다음은 그 책의 인상 깊은 대목이다. “기도 중 사제가 ‘그러나 우리를 강도처럼 여기소서’라고 읊조리자, 죄수들은 족쇄를 찬 채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그 기도문 속 ‘강도’라 여겼다.”

감옥에는 정치범부터 살인범, 중범죄자들이 함께 수감되어 있었다. 그중 아버지를 살해한 군 대위는 훗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모티프가 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옥에서의 절망과 각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하루하루를 세며 기다렸다. 1,000일이 남았을 때조차 하루가 지나면 ‘이제 999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고독 속에서 나 자신을 철저히 되돌아보며, 과거의 모든 실수와 방종을 반성했다. 이 고독이 없었다면 그런 성찰도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날이 한결같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는 고통을 견디며 새 삶을 준비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환경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강인함을 지녔는지를 그는 작품 속에서 단단히 증명해냈다.

“그렇다. 인간은 불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다.” 이처럼 문학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생에 대한 미세한 갈망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좋은 문장, 좋은 문학은 절망의 순간에도 삶을 붙드는 힘이 된다.

필자 또한 무기력해질 때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찾는다. 한 줄 한 줄 읽으며 그 매서운 겨울 들판 같은 문장들 속에서 마음이 서늘해진다. 특히 1981년 8월, 안기부 지하실에서의 고문과 고통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지금 너무 편안한 것이 아닐까?’

‘내가 고통이라 여기는 것이 정말 고통인가?’

그 의문이 필자를 일으켜 세운다. “신정일, 지금 뭐하고 있나. 시간이 흐르고 있잖아. 그렇게 살아선 안 되잖아.”

2025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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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문화사학자, '신택리지' 저자, (사)우리땅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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