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다윗에게 배우는 상한 마음, 고난, 그리고 자유

다윗 이미지 (AI 생성)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시 69:20)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배설한다는 것입니다. 배설은 아주 중요한 생명 현상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합니다. 영혼이나 마음의 배설물도 있습니다. 분노와 짜증, 스트레스는 마음의 배설물입니다.

분뇨는 잘 가리면서 분노는 못 가리는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쌓여 하루 종일 분노가 마려운 상태로 생활합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줄 몰라서 옆 사람에게 쏟아내는 모습, 그것이 오늘날 세상의 민낯이 아닐까요?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어디에다, 누구에게 나의 상한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이 상할 때마다 하나님께 쏟아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쏘아붙이며 따지듯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십니다. 마음 상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상한 마음을 어디에, 누구에게 쏟아 놓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쏟아 놓으면 싸움이 되지만, 하나님께 쏟아 놓으면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가장 청결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분노를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고난이 없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시 60:1)

회복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버려 흩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분도, 고통과 절망을 주시는 분도 동일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지만, ‘내가 고난을 겪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나님에게 기쁨만을 요구할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는가’, ‘하나님은 나를 항상 만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인생길을 걸었던 다윗, 그는 어떤 질문으로 살아냈을까요? 그의 노래들을 보면 후자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고통을 고통스러워할 줄 알았습니다. 고난을 노래할 줄 알았습니다.

그에게 고난은 피하고, 극복하고, 해석해야 할 일이기 전에 그 또한 주님이 주신 것이었기에 고통을 그저 아파했습니다. 골고다의 꼭대기에서 진통제를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아플 때는 아파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임시방편입니다. 아픔의 시간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믿는다면, 아픔을 그저 아파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능력입니다.

다윗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이든,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기에 받았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애 3:26-28)

태도를 결정하는 자유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이로다”(시 57:4)

다윗은 독 안에 든 쥐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다가 갇히고 말았습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을 때에 드린 기도입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절대 빼앗을 수 없는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굴속에 갇혀 마음을 정합니다. 태도를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7) 다윗은 상황과 환경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유로웠기에 다윗을 추격한 걸까요? 그는 말 한마디로 수천의 군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두려웠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열등감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이라는 선택지를 갖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단지 ‘의지할 신’이 아니라, ‘반응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 ‘자유로울 수 있는 기반’이었습니다.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