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고백록’으로 불리는 세 권은 4세기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참회록>이다. 시대와 문화는 다르지만, 이 세 책은 모두 인간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아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아시아엔>은 이들 세 사람과 저작을 먼저 소개한 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등을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가 삶의 공허 속에서 신앙을 붙잡으려 애쓰던 그 시절, 그는 정교회의 종교의식 전반에 깊은 회의감을 드러냈다. <고백록> 제14장과 제15장에서 그는 교회의 형식적인 전례와 교리 해석의 모순, 그리고 종파 간의 배타성과 위선에 대한 깊은 고뇌를 털어놓았다.
“형식만 남은 전례, 오히려 신앙을 해친다”
톨스토이는 정교회의 예배 중 반복되는 전례와 의식이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형식만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신앙이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의식 속 모순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특히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도 마음속 깊은 거부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나는 만약 그 의미를 억지로 해석하려 든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신과의 관계도, 신앙 자체도 붕괴될 것 같았다.”
절기 전례 또한 톨스토이에게는 큰 걸림돌이었다. 부활절은 물론 매주일을 ‘소부활절’로 삼는 전례에 대해 그는 실체 없는 상징주의라고 느꼈으며, 승천절·오순절·현현절·성모축일 등 기적 중심의 기념일들에 대해서도 이성적 수용이 어려워 끝내 외면했다.
종교의식과 교단 갈등에 대한 회의
그런 톨스토이에게 전환점을 준 건 뜻밖에도 한 무식한 순례자였다. 그는 농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신앙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진리에 조금씩 다가감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그는 성인과 순교자의 생애를 담은 책들을 탐독하면서도 기적이나 신비주의적 요소는 배제한 채 읽었다. 오히려 그런 단순한 이야기들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성 마카리우스, 석가모니,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리고 황금을 발견한 수도사 등의 이야기는 그에게 삶은 죽음으로 말살되지 않으며, 진리는 단순한 영혼의 실천 속에서 발견된다는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반대로, 지식인 신자들의 책과 말은 오히려 그에게 의심과 불만,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도 고백한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자책으로 버텼던 3년
초기에는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묵묵히 넘겼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 그는 점점 교리적 모순과 형식주의적 신앙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글을 모르고 단순한 삶을 사는 농부들이 교리의 복잡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온전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음을 부러워했다. 반면 자신은 교리 속에 숨어 있는 거짓과 과장, 형식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고 회상한다.
정교회, “오직 우리만이 진리” 주장에 톨스토이 분노
톨스토이에게 결정적인 충격을 준 것은 정교회의 종파주의적 배타성이었다. 그는 가톨릭, 개신교, 몰로칸파 등 다양한 종파의 신자들과 교류하며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과 진지한 신앙의 모범을 목격했다. 그러나 정교회 지도자들은 이들을 “거짓에 속은 자들”, “마귀의 시험을 받은 자들”이라 규정했고, 심지어 다른 종파 신자들을 이단으로 단죄했다.
“두 교리가 서로 모순된다면, 어느 쪽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는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종파 간의 상호 비방과 적대가 진리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행태라고 판단했다.
종교 명분 아래 자행된 폭력…“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전쟁과 살인이었다. 그는 전쟁 중 동포를 학살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교회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고 고백한다.
전후 혼란 속에 젊은이들이 학살당하는 상황을 묵인한 수도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은, 그의 눈에 기독교의 본질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위선이었다.
이처럼 <고백록> 제14~15장에 나타난 톨스토이의 고백은, 진정한 신앙은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삶과 실천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진리를 향한 그의 투쟁은 여전히 현대인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