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칼럼

[이정현 칼럼] 세종시, 행정수도인가, 출퇴근 수도인가?

정부 세종청사 <사진 나무위키>

세종시는 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며, 무엇을 바로 세워야 하는가?

이제 세종시 문제를 더는 피해 갈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대한민국의 행정 중심도시, 특별자치시,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으로 출발한 세종시는 여전히 절반만 완성된 도시다. 절반만 옮겨온 행정, 절반만 작동하는 수도 기능이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세종시는 국가 손실의 상징, 행정 비효율의 박물관, 불완전한 수도 실험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종시는 단순한 신도시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세종시는 대한민국 국정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국가 대개혁 프로젝트였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행정기능을 과감히 이전해 국가 운영 시스템을 재설계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세종시는 그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중앙부처는 반쪽만 옮겨왔다. 장관은 서울에 있고 직원은 세종에 있다. 출퇴근은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기형적인 구조가 일상화됐다. 국회는 여전히 서울에 있고, 세종의사당은 상임위 일부 이전이라는 절반짜리 조치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실은 서울 용산에 그대로 남아 있고, 외교·안보·경제 컨트롤타워 역시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다. 주요 청사들은 서울과 세종으로 분리 운영되는 구조 속에서 효율은 계속 붕괴되고 있다.

이쯤 되면 세종시는 행정수도도, 정치수도도, 경제수도도 아니다. 반쪽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프시티’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지와 약속을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가 제 기능을 못하는 근본 원인은 구조 자체가 이원화돼 있기 때문이다. 장관과 차관, 실국장 체계가 서울과 세종으로 나뉘어 있다. 장관회의는 대부분 서울에서 열리고, 차관회의는 세종에서 열린다. 보고와 결재, 협의 체계가 이중으로 돌아가면서 하루가 이동 시간으로 사라진다. 공무원들은 매일 서울과 세종을 왕복하며 평균 3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낸다. 가족은 서울에 두고 근무지는 세종인 ‘기러기 공무원’도 대량으로 발생했다. 일부 직원은 출장만 하다 하루를 마치는 일도 다반사다. 이것이 과연 행정수도인지, 아니면 출퇴근 수도인지 묻게 된다.

국가 의사결정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부처 간 협조는 서울, 세종, 과천, 대전으로 흩어져 회의 일정 조율만 해도 하루가 소모된다. 국가 시스템의 회전수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그 결과 인력 낭비, 교통비와 숙박비 증가, 회의 중복, 컨트롤타워 부재, 책임소재 불분명이라는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비효율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는 구조적 손실이다.

국회 이전이 필연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가 서울에 남아 있는 한 세종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입법과 행정의 협업이 2시간 거리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예산 심의는 서울에서 하고 집행은 세종에서 한다. 청문회는 서울에서 열리고 해당 부처는 세종에 있다. 국정조사는 국회에서, 자료는 세종에서 오간다. 즉시성이 사라지고 국가 운영의 리듬은 파편화된다. 상임위원회 몇 개 옮기는 ‘세종의사당’은 국회 이전이 아니라 국회 출장소에 불과하다. 완전한 국회 이전을 선택하지 않는 한 국가 시스템은 결코 일원화될 수 없다.

대통령실 이전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이 서울에 남아 있는 한 행정수도 완성은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총리, 국무조정실, 중앙부처의 지휘체계에 시간차가 생긴다. 국가 안보 컨트롤타워가 수도권에 묶이고, 위기관리 체계도 일원화되지 못한다. 서울 중심 정치 구조는 더욱 고착된다. 행정의 심장과 정치의 심장을 따로 유지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 구조는 그 자체로 비효율 모델이다.

세종시는 특별자치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정작 특별한 권한은 거의 없다. 자치입법권과 자율재정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인구 대비 정무·행정 인프라도 부족하고, 교육·문화·경제권 역시 통합되지 못했다. 광역기능과 기초기능이 뒤섞인 비정상 구조 속에서 세종시는 ‘특별’이 아니라 ‘보통 신도시’로 굳어지고 있다. 특별자치시라면 최소한 광역단체 권한, 대도시 특별법 수준의 재정 자율성, 행정수도 지위에 맞는 조세·규제 특례, 수도권을 대체할 산업 유치 기능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세종시는 이 네 가지 모두가 부족하다.

세종시가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실패하는 동안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더 심화됐다. 과천, 여의도, 광화문, 용산, 판교, 마곡 등 주요 정부·산업 기능은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 집값은 폭등했고, 대학과 기업, 인재는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역 국력은 약화됐고, 지방대는 붕괴됐으며, 청년들의 지역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세종시가 제 기능을 못하는 순간, 지방 전체가 함께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택해야 한다. 반쪽 행정수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국정 시스템 개편으로 갈 것인가. 반쪽 시스템을 유지하면 서울과 세종의 이원화는 계속되고, 국회는 출장소 형태로 머물며, 대통령실은 서울에 고착된다. 공무원의 이중 이동은 반복되고 국정과제 실행 속도는 더 느려진다. 지역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 길을 걷는 한 ‘세종시 실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완전한 행정수도 체제를 구축하는 길이다. 국회를 전면 이전하고 대통령실을 이전하며, 주요 부처와 산하기관을 일괄 이전하는 것이다. 세종·청주·대전을 묶은 광역 수도 기능 축을 구축하고, 특별자치시에 걸맞은 초광역 자율권을 부여하며, 산업·교육·문화 기능을 포함한 복합수도를 완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국가 정상화의 길이다.

이전 방식 역시 현실적인 로드맵이 이미 가능하다. 국회 세종 전면 이전은 법률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대통령 제2집무실을 상시화한 뒤 대통령실을 단계적으로 이전할 수 있다. 외교·안보·경제 컨트롤타워를 옮기고, 세종시의 권한을 강화하며, 대전·청주와 통합한 수도 기능 축을 구축할 수 있다. 주요 공공기관을 재배치하고, 서울은 금융과 문화 중심지로 재정립하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헌법 개정 없이도 충분히 추진 가능하다.

세종시는 지금 ‘미완의 수도’다. 이 미완의 수도를 완성하지 못하면 행정은 무너지고, 국가는 느려지며, 정치는 혼란해지고, 지역은 쇠퇴하고, 수도권은 더욱 비대해질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반쪽 수도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국가 시스템 개편으로 나아갈 것인가. 세종시를 진정한 행정수도이자 대한민국의 미래 수도로 완성하는 일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여야의 문제가 아니며,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구조의 문제다.

이제 우리가 요구해야 할 때다. 정부가 움직이도록 만들고, 정치가 결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세종시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곧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정현

3선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정무·홍보수석 역임, 전 새누리당 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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