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새책] 김수원 시집 ‘나는 아직 넘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넘치지 않았다> 김수원 시집 (불교문예)

나는 상주입니다.
가끔 일어나 크기도 모양도 다른 신발들을 정리하지요
밑창에서 시간이 읽히는 신발
안쪽만 닳은 신발, 바깥쪽만 달은 신발, 굽이 닳은 신발…(중략)

그런 신발들, 이 모양 저 모양
신발들의 짝을 맞춰줍니다
왔구나, 잘 가, 인사합니다
발을 정리하고 손을 흔듭니다 (‘잘 가’)

그 어느 때보다 설렘과 혼돈이 교차하던 2025년 봄, 김수원 시인의 <나는 아직 넘치지 않았다>(불교문예) 시집이 나왔다. ‘로키산맥’이라는 서시 격을 시작으로 63편이 담겨있다. 김수원 시인은 ‘지금’의 시점에서 ‘여기’라는 공간을 기준으로 오래된 과거와 다가올 미래, 가깝고 먼 곳을 자유자재 소환하는 시들로 시집을 채운다.

장례식장에 놓여있는 신발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상주의 심정을 이토록 예민하고 실감있게 그려낼 수 있을까?

이 시 한편으로 시집은 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필자는 감히 말한다. 누구를 마지막 회고하고 이별하는 빈소는 바로 인간의 한 생애를 온전히 느끼게 한다. “왔구나” “잘 가” 두 마디가 쟁쟁하게 울려온다.

강원도 영월 출신인 김수원 시인은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전문가과정 수료 뒤, 2017년 <불교문예>로 시단에 발을 들였으며, 2019년 <한국시조문학>으로 시조에도 등단했다. 그의 수상 경력 중 계간문예 ‘상상탐구’ 작가상이 흥미롭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로키산맥’, ‘빛의 사격’, ‘칼을 위하여’ 등 세계와 자아를 담은 시들이, 2부에서는 ‘편지의 계절’, ‘비가 내리는 날엔’, ‘여름에 쓴 책’ 등 계절과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시들이 있다. 3부에는 ‘백야’에서 ‘살아야 할 수 있는 것’까지 4부는 이 글 모두의 ‘잘 가’와 ‘흔드는 손’으로 끝난다.

시집 첫 머리 ‘시인의 말’에서 김수원 시인은 “…(전략) 시라는 지금이 생겼다 / 그러나 지금은 어제보다 아득했고 / 나는 아득함으로 쌓아 올린 / 로키산맥이었다”고 말한다. 로키산맥은 서시 격인 시인의 말과 모두 63개가 담긴 시집 가운데 두번 등장한다. 첫째 시는 아예 제목부터 ‘로키산맥’이다. 도전, 탐험, 생태 다양성 등으로 자유와 웅장함을 상징하는 로키산맥이 시인에게 강렬한 그 무엇인가를 던졌을 것 같다. 그게 궁금하다. 다음 시집 제목은 로키산맥이 될 듯싶다.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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