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없는 전쟁 속, 사상가들 속속 등장
춘추전국시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벌어지고 나라가 뒤바뀌는 혼란의 시대였다. 이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했고, 다양한 학파들이 경쟁했다. 그중 유가(儒家)는 공자를 중심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에 도전장을 내민 대표적 사상가가 바로 묵자(墨子)와 양주(楊朱)였다.

유가를 넘어서려 한 묵자
묵자(본명 묵적, BC468~BC376)는 유가 사상으로는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보고, 묵가(墨家)를 창시했다. 한때 공자의 손자 자사와 함께 유학을 배운 것으로 알려진 그는 유교의 형식적, 비효율적 체계를 비판하며 백성과 현실에 기반한 사상을 추구했다.
묵자는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신념 아래, 함께 일하고 나누며 사는 ‘겸애(兼愛)’의 철학을 제시했다. 이는 하늘(신)이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듯 인간도 서로를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윤리이다. 그의 주장은 당시 농민, 상인, 수공업자 등 신흥 민중계급의 큰 호응을 얻었다.
《묵자》 53편에는 겸애 외에도 절약과 실용, 반전(反戰) 사상, 방어기술의 발전, 언어 명확화 등 다양한 실천적 철학이 담겨 있다. 묵자는 실천적 기술과 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전략가로 활약했다. 초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왕을 찾아 열흘간 설득했던 사례는 그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근대 개혁가 양계초는 그를 두고 “작은 예수이자 큰 마르크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 양주
한편, 위(魏)나라 출신의 양주(BC440?~BC360?)는 묵자보다 한 세대 뒤에 등장한 사상가로, 노자의 제자였다는 설도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한 생명”이라며 ‘위아(爲我)’ 사상을 주장했다. 쉽게 말해,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개인주의 철학이다.
양주는 권력과 명분보다 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더 중시했다. 한비자(韓非子)는 그를 “성(城)에 들어가지 않고, 군대에 머물지 않으며, 정강이 털 한 올과도 세상의 이익을 바꾸지 않은 자”라며 높이 평가했다. 《회남자》, 《열자》 등에서도 그의 철학은 존중받으며 소개되었다.
양주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반대했다. “한 올의 털도 남을 위해 뽑지 않겠다”는 그의 비유는 인간의 자유와 생명 보존에 대한 철학적 입장을 잘 보여준다.
묵자 vs. 양주–평등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
묵자가 ‘겸애’를 통해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중시했다면, 양주는 ‘위아’를 통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야말로 해악이라고 여겼다. 묵자는 ‘털 한 올’ 정도는 기꺼이 남을 위해 내놓을 수 있다고 보았지만, 양주는 자신의 일부분인 털 한 올조차도 타인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맹자는 이런 양주의 사상을 두고 “사악한 설”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양주는 임금이 없는 세상을 주장한다(無君)”고까지 표현하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주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강조하며, 당대에는 오히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논리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명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참조]강성률 著 푸른솔 刊 《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 2》
김경윤 著 탐 刊 《묵자‧양주, 로봇이 되다》
이성주 著 신병근 畵 생각비행 刊 《묵자, 이게 겸애(兼愛)다!》
임건순 著 시대의창 刊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최훈 등 著 교보문고 刊 《죽은 철학자의 살아 있는 위로》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수천년 유교나라 한국에서는 패전국 불교 Monkey이자, UN적국, 전범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한, 주권없는 왜구 서울대와, 추종세력들의 노예합창등, 토착왜구들의 항거도 무섭습니다.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 서울대류의 노예합창. 주권국끼리, 국가주권을 행사하면서, 군사적 위협이 되는부분은 예방하여야겠습니다. 그런데, 군사적 위협이 되는나라는,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해온 한국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문제될게 없는 상태입니다. 일본은 패전국이라 군사적 측면에서 한국 안중에도 없는 약소국상태의 안전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렇다고 패전국에 UN적국이며, 전범국인 일본이 한국의 우방국도 아니어왔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한 적국상태로 영원히 이어져야 할 나라가 불교 Monkey 일본입니다. 중국처럼 풍요를 안겨주는 나라도 아니고, 미국처럼 한미상호 방위조약으로, 굳건한 군사적 안전을 주는 나라도 아니며, 무역적자만 안겨주고 영토문제나, 과거 불법.강제의 식민지잔재로,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밑의 레벨로도 인식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한국은 중국.미국.서유럽.러시아처럼 갈등이 있으면, 웃으면서 해결해야 할 강력한 존재감이 있는 나라들과, 군대도 못가지고 전쟁도 못하며 미국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미국 식민지상태의 존재감없는 일본같은 나라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중국,미국,러시아 및 패전국에 전범국이며 UN적국인 일본과 어울리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형태의 갈등을 가지고 공존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불교 Monkey 일제강점기의 종교정책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 불법강점기 당시에는,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유교국가중 하나인,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된 일본 후발 국지적 신앙.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일본 극소수 신앙)만 포교종교로 하여, 유교가 왜곡되었는데, 최근 다시, 주권없이, 일본 불교 잔재 망령들이 되살아나서, 별 문제없던 유교국가 한국을 다시 왜곡하고 있습니다.
@브라만에 대항해 후발 신앙을 만든 불교의 부처가 창조주 범천보다 높고 창조주를 가르친다는 Monkey발상 상기시킴. 일제 강점기 불교 Monkey일본이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 유교를 인정않았음. 그리고 창조주에 대드는 성씨없는 점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중국이 한국과 교류하며, 한국 경제 체급올려주며, 일본보다 1인당 GDP높게 만든 중국.중국아니면 특별히 큰 시장도 없음.
필자는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출신입니다.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능력과 학술적 견해로, 수천년 인류역사를 가르치는 세계사와 한국사를 병행하고, 국제법.헌법.국가주권등을 종합하여, 교황윤허의 예수회 귀족대학 서강대와 공존하고자 합니다.소수정예로 시작하여, 영어 잘하고, 학사관리 엄격하고, $로 교수월급주며, 외국인 교수와 우수교수가 영입된 서강대.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교황청 산하 실세계파, 예수회 산히의 귀족대학으로,선진 교육경험이 축적되어, 한국 대학교육에 기여해 온 서강대. 성균관대도, 미군정당시 우후죽순 대학이 설립되며,종합대들이 만들어지던 과도기에는, 단과대 성균관대였음. 미국같은 자유 민주주의 나라에도 학벌 존재합니다. 동아시아나 서유럽은 대학 역사가 오래되어, 세계사나 국사, 국제법.헌법.주권등을 종합하여 자격이 존중됨.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 서강대는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倭서울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지만, 미군정때 성균관 약탈하기 위한, 하위법과 대중언론.사설입시지때문에, 다른 대학들이 서울대 이기기 어려울것. 대중언론 과정으로 보면 주권.학벌없는 서울대 뒤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어떤 입장을 가졌어도, 욕구불만은 존재할것.@약탈당하면서도,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을 유지하며,미군정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이전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과 교황청은, 동아시아가 어찌할 수 없는 미국인들의 이민자 조상들이라는게 강점입니다.가톨릭과 개신교! 그런데, 한국이 수천년 유교국가인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세계사에서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중국 황하문명, 인도문명과 별도로, 그리스 에게문명을 문명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중국의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리고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세계종교로는, 유교, 기독교, 불교를 고대의 3대 세계종교로 보고,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후발 세계종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의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이처럼 중국문화는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인 서유럽의 종교문화, 사상, 철학, 대학, 과학의 발전만큼 중요한 세계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로 보면,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그리스지역의 에게문명이, 인류문명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원래 세계 4대문명과, 에게문명은 다신교신앙이었으며, 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진 대상을 신격화하는 선사시대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독교사상은 다신교의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후, 인격신 중심의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가 중심이 되고, 헬레니즘사상도 오랫동안 같이 병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세계종교는 동아시아 유교, 로마제국 기독교, 인도 아소카왕때의 왕성한 포교로 인도지역중심 불교가 3대 세계종교였습니다. 이슬람교는 나중에 중세시대에 서아시아 중심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는 불교 이전 인더스 문명과 정복민의 신앙에서 형성된 브라만교가 선발종교였음.,
그 후에,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성직자계급) 다음계급인 크샤트리아(정치.군사담당)출신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특성을 보였는데, 최고계급인 브라만에 제사용품을 공급하는게 하나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부정하여, 누구나 바른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이 각광받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같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를 하여, 세계종교로 인정받다가, 나중에 다시 브라만교가 불교를 탄압하면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는 억압받고 있습니다. 불교인구는 일본,태국 및 동남아 약소국들로, 그 수가 몇억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적 세계종교 유교나, 가톨릭 및 중세시대의 세계종교 이슬람교는 10억 이상의 세계종교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에서 싹튼 다신교 신앙중 황하문명의 유교와,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는 지금도 힌두교로 이어지고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과, 이집트 문명 지역은 중세시대의 이슬람교의 무자비한 포교로 이슬람국가로 변했습니다. 에게문명의 헬레니즘은 기독교와 경합하다가, 점차 기독교가 강력한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만물의 창조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최고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며, 그 밑에 여러 하위신이 있는 다신교신앙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교.힌두교도 다신교 신앙입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교는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부처의 무신론적 불교 Monkey신앙.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헬레니즘의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로마제국에서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유태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아서, 기독교사회에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불교는 인도정복자들이 만든 브라만교의 상당부분을 이어받았고(다시 브라만교에 억압당해 인도는 천 몇백년동안 불교를 억압하며, 브라만을 섬기는 힌두교로 이어짐) , 기독교는, 이스라엘보다,로마제국에서, 헬레니즘과 융합되어, 원죄의식등을 가지는 세계종교로 계승된 측면이 강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으로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유교와 가톨릭, 한국사, 세계사, 국제법, 헌법등을 종합 반영하여 유교전통 계승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