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고백…”저지른 죄가 폭포같았다”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7대 죄악’은 인간의 내면을 위협하는 대표적 유혹들이다. 교만, 시기·질투,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이 그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각 항목을 나 자신에게 비추어 보며, 살아온 삶과 신앙의 여정을 고백하고자 한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죄악으로 꼽힌다. 나는 아나키스트로서 권위에 저항하며 살아온 성향 덕분에 교만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만일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진정한 겸손은 스스로를 겸손하다고 여기는 순간 사라지는 것 아닐까.
시기와 질투는 분열과 당파를 낳는 감정이다. 나 역시 삶의 어느 순간 시기와 질투에 물들었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는 그런 감정에 둔감한 편이었다. 타인의 성공에 관대해지려는 마음을 지니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으나 쉽지 않았다.
분노는 경계해야 할 감정이지만, 불의에 대한 ‘의로운 분노’는 신앙의 표현일 수 있다. 나는 대형 교회 장로의 의문사 사건을 계기로, 내부 비리를 고발하고 3년에 걸친 법정 다툼을 감내한 적이 있다. 결과는 유죄였지만, 진실을 향한 고발이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거룩한 분노’의 실천이었다고 믿는다.
나태는 하나님이 명하신 ‘노동의 명령’을 거스르는 죄악이다. 나는 두 차례 큰 나태의 시기를 겪었다. 특히 법적 고난 이후 찾아온 우울과 무기력은 7년 넘게 나를 짓눌렀다. 새벽기도와 성경 필사를 통해 나는 겨우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이 두 가지를 삶의 무기로 삼고 있다.
탐욕은 물질과 권력, 명예에 대한 욕망이다. 아나키스트적 성향 덕분에 나는 비교적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자각을 더 중시해온 내 삶의 태도가 그런 욕망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식탐은 배를 섬기는 인간의 충동이다. 나의 경우 식탐보다는 술에 대한 탐닉이 문제다. 개신교인으로서 술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여전히 인간관계 명목으로 마시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도 기도 제목으로 간직하고 있는 심각한 숙제다.
색욕은 가장 다루기 민망한 죄악이다. 언론인 시절, 나 역시 방탕했던 삶을 살아온 적이 있다. 당시에는 모두가 그러했고, 나도 그 흐름에 휩쓸렸다. 지금은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때때로 솟구치는 충동 앞에서 인내와 절제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이 글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나는 신앙인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씨앗을 자각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야말로 신앙인의 길이라는 믿음은 흔들림 없다. 하지만 언제 또 깨질지 나도 모른다. 다만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