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잠깐 묵상] 누가 다스리십니까, 무엇을 찬양하십니까

음악이 되려면 음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그림이 되려면 색이 배치되어야 하듯, 우리의 인생 역시 하나님 안에서 다스려질 때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시편 97편과 92편을 중심으로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개의 음을 아무리 반복해 연주해도 음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음들로 어떤 사람은 깊은 감동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단지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같은 음을 가지고도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색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각 색은 중요하지만 나열한다고 그림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술가의 손에 들리면 몇 가지 색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장면이 창조됩니다. 글자 역시 단순한 조합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는 단어 몇 개로 깊은 진리를 표현합니다. 이 모든 차이는 ‘다스림’의 문제입니다.

시편 97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섬은 기뻐할지어다.” 하나님이 다스리실 때 피조 세계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없이 다스리겠다고 나선 이후, 자연은 신음하고 인간 사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혼돈과 탐욕의 세계는 다스림의 왜곡이 낳은 결과입니다.

다스림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요소를 제자리에 두고, 조화를 이루게 하며, 때로는 부조차도 조화 속에 엮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다스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입니다.

시편 92편의 시인은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의 자발적인 반응입니다. 아침의 햇살, 밤하늘의 흔들림, 작은 것 하나에도 그는 창조주의 손길을 인식했고, 그 감탄이 찬양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것에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감탄하고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다녀오면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어집니다. 찬양과 전도는 그래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예술을 알고, 참된 찬양의 대상을 아는 사람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해석하고, 찬양합니다. 인간, 돈, 이념, 성공이 아닌 진정 찬양할 분을 아는 이들은 삶의 방향도 다릅니다.

음악이 되려면 음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그림이 되려면 색이 배치되어야 하듯, 우리의 인생 역시 하나님 안에서 다스려질 때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누가 다스리시는지, 그리고 무엇을 찬양하고 있는지, 오늘 다시 묻습니다.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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