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9일 오전 11시 14분 평택역에 도착해 1번출구로 나가니 7인승 승용차가 서 있고 패팅 차림을 한 분이 손짓을 했다. 첫 만남이지만, 작년 가을 한국외대 임영상 명예교수로부터 소개받은 후 몇차례 통화와 카톡 메시지를 주고 받아 오랜 지인을 만나는 것 같았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소학섭 이사장이다.

4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를 지나고 중앙차선이 없이 일방의 차량이 멈춰야만 교행이 가능한 폭 3m 남짓 농로를 3km 정도 달리니 안성시 공도읍 원중복길 25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나타났다. 고려인 학생들만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과 수학, 역사 등을 가르치는 특화된 학교다. 15살에서 20살 안팎의 고려인 학생 40명이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5일 수업을 받고 있다. 평택역에서 학교까지 운전하며 오는 동안 소학섭 이사장(그는 원래 목사이며, 여기서도 그를 목사라 칭한다)은 기자에게 학교와 학생 등에 대해 성심을 다해 소개해줬다. 소 목사와 기자가 차에서 내리자 학생들은 그동안 알고 지내온 것처럼 다가와 인사를 했다.

이 글은 고려인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소학섭 목사의 여정에 관한 것이다. 교육, 주거, 사역, 그리고 신앙이 맞닿아 있는 현장의 목소리에는 땀과 눈물, 그리고 믿음이 서려 있었다.
고려인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와 교육 현실
인천에서 온 마리아라는 아이의 사례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여러 시설에서 받아주지 않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오갈 데 없는 학생들은 마리아만이 아니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고려인 4세들인 학생들은 한국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부모가 먼저 한국에 와 막노동을 하거나 공장 등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학생들의 주거도 학교에서 맡아야 한다.

소학섭 목사는 사비로 보증금을 내고 월세 아파트 10가구를 임대해 기숙사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집값과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재계약이 어려워졌고, 지금은 5가구만 남았다. 학생들은 계속 들어오려 하지만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그에게 요즘 희망이 생겼다. 한국해비타트와 함께 40실 규모의 기숙사를 새로 건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수 션씨와 아들 화랑이가 학교 건축을 위해 뛰고 있다. 그의 꿈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새로운 교실동과 기숙사동은 ㄴ자, ㄱ자 형태로 나뉘어 배치될 예정이며, 기숙사는 3인 1실 기준으로 최대 1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신앙과 사명의 결합, 가족이 함께 만드는 학교
소 목사는 원래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했었다. 서울에서 2009년 안성으로 내려와 지금의 사역을 시작했고, 당시 자녀들은 사춘기 시기였다.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사역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웃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가족들도 이해했다. 큰 딸은 지금 간호사로, 작은 아이들은 대학, 고교를 다니고 있다. 사택은 학교 건물 일부를 활용하고 있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로, 대안교육의 실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점심 급식을 준비하고, 현장체험학습 계획서, 인성교육 커리큘럼, 안전교육 매뉴얼까지 마련해 학교 운영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몸은 중고등학생이지만, 생활은 초등학생 수준이다”는 말에서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로뎀나무학교는 하나님이 준비하셨습니다”
소 목사는 학교를 ‘로뎀나무’에 비유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엘리야 선지자가 광야에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것처럼, 이 학교도 고려인 아이들이 위로받고 새 힘을 얻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로뎀나무는 대단한 피난처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학교 운영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뒤따른다. 가수 션과 한국해비타트 등의 도움으로 학교 교사와 기숙사 등을 마련키 위해 신축공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도로 허가와 운동장 확보가 만만치 않아서다. 인허가를 받으려면 도로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지만, 인근 땅 주인의 동의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운동장도 마찬가지다. 소학섭 목사는 기자에게 “이 문제를 위해 꼭 기도 부탁드립니다. 꼭요. 주변에도 중보 기도 당부드립니다”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이미 빌려주기로 했다가 돌연 거절당한 경험이 있어 다시 설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소 목사는 “기도로 사람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작은 시작, 큰 결실
소 목사는 학교 일 외에도 지금도 새벽기도, 주중 예배, 주말 예배를 모두 인도하며 교사로서, 목회자로서 헌신하고 있다. 주일에는 예배 후 성경공부와 급식을 하고,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그는 “밥 한 끼는 정말 잘 먹여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급식의 질 하나로 사랑을 전달한다. 그는 “이 모든 여정은 ‘가능성 0%에서 100%로’라는 믿음을 갖고 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새 학교는 션(지누션의 션)이나 해비타트의 도움으로 지어질 것이지만, 그건 모두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든 한국에 남든, 하나님의 선순환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이주 청소년들에게 쉼과 희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꿈을 함께 만들어가는 믿음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소학섭 목사의 ‘0%에서 시작한 사역’은 지금도 기도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