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한반도는 또 한 번 중대한 정치적 분수령인 6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 시점에서 6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은 다시금 되새길 만한 사건이다. 당시 처음으로 러시아 현지에서 열린 이 공식 행사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자리를 넘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숨은 챕터’를 복원하는 데 역사적 의미를 남겼다.
특히 주목받은 인물은 조명희 선생(1894~1938)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떠나 연해주에서 문학과 저항을 병행하며 활동한 대표적인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다. ‘낙동강’, ‘짓밟힌 고려’ 등 일제의 탄압과 민중의 고통을 생생히 담아낸 작품들은 단순한 문학을 넘어 무기이자 선언문이었다.

기념식에서는 조명희의 아들 조 블라디미르 선생이 부친을 대신해 건국훈장을 받았고, 대통령 명의의 위문품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다. 당시 주러 우윤근 한국대사는 “100년의 기억을 넘어, 새로운 100년의 희망을 함께 써나가자”며 축사를 했다.
이 행사의 의미는 단순히 한 인물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소외시켜 온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역사적 복권의 신호탄이었다. 조명희 선생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의 일원으로 문학을 통한 계급 해방과 민족 해방을 외쳤고, 이후 소련작가동맹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37년 스탈린 숙청기에 총살당했다.
그의 산문시 ‘짓밟힌 고려’는 지금 읽어도 전율을 일으킨다. 농민, 노동자, 여성, 그리고 아이들까지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고통받는 장면이 날카롭고도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칼을 칼로 갚고, 피는 피로 씻으려는 싸움”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조명희가 문학으로써 항일 투쟁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현재, 조명희와 같은 인물들이 역사 교과서와 공공의 기억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이 남긴 저항의 언어와 실천은 지금 이 시대, 혐오와 퇴행, 민주주의 위기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조명희의 삶과 문학은 단지 좌우 이념을 넘어, 민족의 독립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한 지식인의 혼신의 기록이었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아가려면, 빛과 그늘 속 모든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억하는 다층적 역사인식이 더욱 필요하다.
6년 전 모스크바에서 울려 퍼진 ‘임정 100주년’의 외침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늘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