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률 박사의 저서 <동북아시대와 조선족>(박영사, 2007)은 조선족 사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동북아 국제정세 속에서의 역할을 심도 깊게 분석한 학술서다. 놀라운 사실은 18년 전 저자의 이 책이 지금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연변과학기술대학 설립에 참여하고 부총장직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족의 현재와 미래를 다층적으로 진단한다. 그는 이후 총장을 역임하며 그의 조선족에 대한 연구를 더 깊이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동북아시대 조선족 연구의 배경
-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의 도래
- 조선족 사회의 형성과 민족 특징
- 조선족 문화의 형성과 특성
- 개혁개방 후의 조선족 사회
- 한중 경제협력과 조선족 사회 및 문화
- 조선족의 주변국가 진출
- 동북아 국제협력과 조선족 사회
- 조선족 사회의 진로
저자는 특히 조선족이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치·경제·문화적 가교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동북아 국제협력의 촉매제로서 조선족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저자는 “조선족은 단순한 소수민족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조선족은 한중 양국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특수한 집단으로서, 기업 간 교류와 정부 간 협력에서도 중간자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책은 조선족 사회가 중국 내에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일찌감치 지적했다. 도시화, 산업화, 교육 수준의 향상 등은 조선족 사회를 한층 현대화하고 있지만, 동시에 민족 정체성의 약화라는 과제를 안기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조선족 사회가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한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2025년 현재에도 유효한 이유는, 한중 관계가 난마같이 얽혀있는 지금, 조선족 사회의 전략적 위치와 가능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여전히 정책과 외교에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한중 간 갈등이 경제·문화 교류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조선족은 여전히 실무 협력과 민간 외교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다. 또한 북한과의 접경지대인 동북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존재는 한반도 통일이나 남북 협력의 과정에서 ‘현장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저자 이승률 박사는 오랫동안 재외동포 정책과 동북아 국제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으로, 동국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중국의 연변과학기술대학 설립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총장직까지 맡았다. 또한 연변대 대학원에서 국제 정치학을 연구하고,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에서 민족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한민족공동체 네트워크인 연우포럼 회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이사장 등으로도 활동하며 동북아 결속과 평화 구현을 위한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한편, 이 박사가 김진경 창립 총장을 도와 이끌던 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은 1992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외국인이 운영하는 정규대학이다. 한국의 교육 선교 네트워크인 IGE가 주도하여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설립되었으며,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과학기술 중심 교육’을 표방한다. 연길시에 위치한 이 대학은 조선족과 한족, 그리고 한반도 및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아우르는 다민족 교육 기관으로 성장해왔다.
초기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교수들과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국제적 명성을 쌓았으며, 졸업생들은 한중 양국의 기업과 공공 부문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 청년들에게 양질의 고등교육과 글로벌 감각을 제공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중국 당국의 종교 통제 강화와 외국인 활동 제한 정책으로 인해 YUST 역시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 외국인 교수진은 철수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변과기대는 여전히 ‘교육을 통한 동북아 평화 구현’이라는 초창기의 정신을 간직한 상징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