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책산책] 서남수·배상훈 공저 ‘대입제도’…”교육인가, 신분인가?”를 묻다

대입제도 표지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과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함께 쓴 <대입제도>(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2년 2월 23일 간)는, 제목부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과연 교육제도인가, 신분제도인가.’ 대입을 단순한 교육의 한 절차로 보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의 기제로 바라보는 이 책은, 현장과 학계를 두루 거친 두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대입제도의 실상을 해부하고 있다.

책은 대입제도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피는 데서 출발한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시작해, 수차례의 입시제도 개편과 대학 서열화 심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입은 단순히 학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인생 경로를 좌우하는 중대한 사회적 절차가 되었다. 저자들은 이 과정을 분석하며, 대입이 점차 교육적 이상과는 멀어지고, 신분적 재생산의 도구로 변질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특히 입시 전형의 복잡성과 다층화는 특정 계층, 특히 정보력과 자원이 풍부한 집단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눈에 띈다. 수시, 정시, 논술, 특기자 전형 등 다양한 경로가 존재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또 다른 ‘기회의 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라는 대한민국 사회의 오랜 신화를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대입이 오히려 기존 신분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통찰한다.

이 책의 미덕은 냉정한 현실 인식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남수와 배상훈은 대입제도 개편의 방향성도 제시한다. 교육 기회의 공정성 강화, 대학 간 서열 완화, 고교 교육 정상화 등이 주요 제안이다. 특히 ‘학생성공센터’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 각자의 성장과 성공을 지원하는 교육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는 부분은, 현실 개선을 향한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도, 구체적 실행 방안에서는 다소 추상적인 논의에 머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학 서열 완화” 같은 구호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지만, 실제 대학 간 경쟁과 시장 논리,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기대를 감안할 때, 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전략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또한, 대입제도가 신분제적 성격을 띠게 된 배경에 대한 사회구조적 분석은 다소 평면적이다. 경제적 불평등, 사교육 시장의 팽창, 지역 간 격차 등 복합적 요인이 어우러진 현실을 좀 더 깊이 파고들었더라면 독자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이 책은 묵직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답은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대입이 여전히 ‘기회의 사다리’일 수 있는지, 아니면 이미 ‘신분을 고착시키는 굳은 사슬’로 변해버렸는지, 책을 덮은 후에도 고민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대입이라는 익숙한 풍경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 데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대입제도>는 악마의 변호인처럼 묻는다. 당신은 대입을 통해 교육의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모르는 새 신분의 벽을 쌓고 있는가. 대입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복합적 현실을 곱씹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결코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다.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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