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5:1-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때마다 승리의 순간을 주십니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승리하는 경험, 복잡한 관계 속에 악을 선으로 갚아 승리한 경험, 또 시험, 취직, 결혼 등등 여러 가지 일에서 승리라 생각할 만한 일들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만 승리의 경험을 통해 당신의 뜻을 보이시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의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에게 벌어진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승리를 허락하셨는가? 나에게 왜 실패를 주셨는가? 드보라와 바락은 사사기 4장에서 엄청난 승리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찬양은 승리가 어떻게 왔는지, 그 승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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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와 바락의 승리 과정을 보면 둘의 대단한 능력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보라는 사회적 정서상 여자라는 것 자체로 약자였습니다. 바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시스라가 무서워 순종하지 않은 겁쟁이였습니다. 심지어 결정적으로 야엘이라는 연약한한 여인을 통해 시스라가 죽게 됩니다. 그들의 승리에는 어떤 교만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백성들이 기꺼이 헌신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사들의 승리는 승리를 이끈 사사 한 사람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스라와의 전쟁에선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군사들이 만 명이 모였습니다. 900대의 병거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900대의 탱크와 수많은 시스라 군대와 전쟁을 하러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은 비를 내려 병거가 못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한 군사들의 헌신으로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들에는 사람의 손길이 녹아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헌신 된 자들, 믿음으로 자신을 드리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나라를 위해 교회가 헌신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헌신하는 사람들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아니요. 하나님은 헌신 된 사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고 믿음의 고백을 드리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냥 번개가 치고 지진이 나면서 본인이 등장하셔서 모든 일을 처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작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또 한편으론 궁극적으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기 합당한 이유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시는 분이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은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삿5:3-5]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제아무리 높은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왕일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 앞에 어떤 것도 강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자연까지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연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감탄할 뿐이지, 자연의 강함에 수긍하고 대안을 마련할 뿐이지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연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시내 산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자연현상과 함께 나타나셨습니다.
[출19:16-19]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하나님은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본 자는 죽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연기, 진동, 소리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 등장 씬에 무대연출 같은 겁니다. 감독도 하나님, 주연도 하나님, 무대연출도 하나님, 상대배역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임재의 방식인 것이죠. 이런 자연현상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오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드보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시스라를 기손 강에서 이길 때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병거가 발이 묶이게 하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 승리를 하나님께서 주셨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쟁에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구나!’ 드보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찬양의 목적이 누군가의 헌신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기 전 이스라엘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설명합니다. [삿5:6-8]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사사 에훗의 죽음을 증명하는 듯 이스라엘에는 어떤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습니다. 대로가 비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 행인들이 오솔길로 다녔다는 것은 무언가 억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전쟁 중인데 방패와 창이 없습니다. 무기가 없는데 어떻게 싸웁니까? 심지어 상대는 철병거 900대가 있습니다. 반면 당시 이스라엘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꼭 누군가 능력 있는 사람, 리더쉽이 있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물도 없고 의지도 없고 나라가 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드보라라는 여자를 세워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자가 사사가 되어야만 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참혹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8절에 보면 이 모든 약해진 상태를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해진 것은 우상숭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약함은 악함으로 시작됐다는 겁니다.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 있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 없이 어떤 영역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경제가 흔들리고, 국방이 무너지고, 나라 체계가 흔들리는 것은 ‘악’으로 인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만이 바른 선, 하나님의 선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집니다. 악이 나라에 계속해서 퍼져가기 때문입니다. 악은 곧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나라의 모든 영역에 문제를 야기합니다. 점차 무너지고 있어서 그렇지 결국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범죄가 자연스러워지면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겁니다. 어떤 영역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이라는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때로는 무시되지만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보여주신 선, 사랑이 없이는 모든 것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드보라는 악에 빠져 있는 이들을 깨웠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삿5:9-11]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10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11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2절과 반복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헌신하는 이들은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즐거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품고 이끌어 갈 힘이 생기게 합니다. 하나의 공동체, 헌신된 공동체는 서로 서로 지탱해 주는 것이죠.
그들이 모집되는 데는 어떤 자격이나 능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부터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들은 그저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는 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모집은 활 쏘는 군인부터 물 긷는 일 하는 여인까지 모집이 된 것입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 군대와 대적해서 싸울 사람들만 모아도 모자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딱히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모집이 됩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전쟁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부름 받은 이유는 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모든 근간을 무너트리는 악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악 때문에 무너졌으니 악을 제거하는 일에 쓰임 받을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살전5:21-22]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교회로 부른 것은 어떤 대단한 능력을 보이고, 대단한 업적을 이루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부르심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부름 받은 이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부르실 수 있는 겁니다. 대단한 사람, 조금 모자란 사람,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인종이 다른 사람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나 ‘거룩’이 있습니다. 능력과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쓰실만한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능력 없고 연약하고 불완전합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고 강하시며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릴 쓰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쓰실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능력으로, 강함으로, 완전으로 채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거룩하게 헌신된 사람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은사에 따라 쓰임을 받는 겁니다. 전혀 쓸모없는 것 같아 보여도 뭔가 잘 할 수 있는게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모집하시고 그에 따라 역할을 주시는 겁니다. 하나도 같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안에 한 공동체로 세워지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들은 승리를 확신합니다. 드보라도, 바락도 모인 지도자들과 백성들도 확신에 차서 노래합니다. 거기에 또 남은 귀인과 백성들이 합류하게 됩니다. 비로소 이들이 한 군대를 이루게 된 것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다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승리를 환상으로 보여주시거나 승리를 보장하는 무언가를 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보지 못한 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히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확인하실 때 먼저 보증해주시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안전한 길, 기적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 전쟁의 길, 위기의 순간을 마주하게 하십니다. 그때 믿음은 미래 승리를 보게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하는 증거가 됩니다. 홍해는 하나님께서 갈라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걸어갔지만, 요단강은 강물이 넘치더라도 믿음으로 발을 넣어야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드보라와 바락, 전쟁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선포한 것이죠.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마지막 부분은 전쟁에 참여자와 비 참여자를 나눠 언급합니다. [삿5:14-18]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 스불론, 잇사갈이 내려왔습니다. 헌신한 지파들의 명단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반면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자기 일이 바빠 오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지금 악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자기 먹고 사는 일만 바빠서 안 내려왔습니다. 그나마 그 중 르우벤은 큰 결심은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결심만 있으면 끝이 아닙니다. 결심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결심을 아실지 몰라도 결심으로 끝낸 것을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믿음은 언제나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이죠. 스불론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에 참여했는데 르우벤은 피리나 불고 앉아 있습니다. 전쟁에 함께 가자는 나팔 소리는 무시하고 피리 소리만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크게 비교되는 모습은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했다는 것이고,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일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교회로 부르신 것은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에 참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선을 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큰 결심이 있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만족을 위한 기도를 멈추십시오. 내 유익을 위한 기도를 멈추십쇼.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나가면 나를 즐겁게 하는 피리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를 만족시켜 줄 것 같은 유혹 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각오로 끝나지 않고 악을 선으로 이기는 실제적인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인생,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딤후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병사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일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집한 사람, 병사로 부른 사람을 위해 전투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군사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교회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갈 때 군사로 무장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기적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자그마한 노력을 통해 당신의 큰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승리를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거룩으로 무장된 군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과 싸워 승리하신 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악으로 무너진 세상을 거룩함으로 수축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
1. 내가 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전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임을 깨달은 경험이 있습니까?
2. 믿음으로 행동해야 할 때 다짐으로 그친 경험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우린 하나님의 부름 받은 군사입니다. 나의 전장은 어디입니까? 어떻게 악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