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해석의 여지

신명기 17장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신 17:8-9)
인간 사회에는 늘 긴장과 갈등이 있습니다. 고소와 고발, 다툼과 충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이 명시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이 아무리 세밀하고 촘촘해도 현실의 해상도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에는 법으로 다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문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율법의 적용이 애매한 경우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법과 법 사이에는 여지가 존재하고, 그 여지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원칙과 여지입니다. 원칙과 원칙 사이에는 여지가 존재합니다. 그곳은 비어 있습니다. 마치 원자와 원자 사이가 빈 공간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지란, 원칙의 힘이 작용하는 필드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여지라는 것은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우리는 해석의 여지 속을 살아갑니다. 법과 법 사이에서, 원칙과 원칙 사이에서 명확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은 채, 우리는 여지를 해석해야 하는 존재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명령어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로 만들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사고하고 해석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신 17:8)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직접 판결하셨다면, 분명히 더 완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영역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제사장과 재판장에게 맡기셨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그 공백을 채우도록 하신 것, 이것은 섭리의 신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신앙이란, 하나님의 원칙에 따라 그 빈 공간을 채우려는 몸부림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CpE_ZDeRyx4?si=lvl-QLrOpsdTG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