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오늘의 시] ‘메멘토 모리’ 이어령(1934~2022)

이어령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壽衣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한밤에 눈을 뜨면
어머니 숨소리를 엿듣던
긴 겨울밤
어머니 손 움켜잡던
내 작은 다섯 손가락.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 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굴렁쇠를 굴리다 흐르던 논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출처 서산시대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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