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창수 시인의 뜨락] 김수영 ‘풀’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김수영은 서울 출생으로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 그는 4·19혁명 이후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담은 참여시를 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뇌수막염을 앓아 학교를 자퇴하였다. 해방 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 잠시 다녔고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현대 시인의 전범이 되고 있다.

‘풀’은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생명체다. 풀 중에서도 특히 잡초, 야생화, 들풀 등으로 불리는 식물들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간다. 박토에서, 사막에서, 모진 풍상에서, 돌밭에서도 모진 조건과 상황을 딛고서 들풀은 생존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풀’은 긴 역사 속에서 권력자에게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맞서 싸워 온 민중을 상징한다. 비바람에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고 도로 일어서는 풀처럼, 온갖 폭정과 착취에 시달려도 도로 일어서서 살아가는 것이 민중이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에서는 민중이 궁극적으로는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묘사된다.

김수영 시 ‘풀’은 그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에 발표한 유작(遺作)이다. 그는 ‘풀’과 ‘바람’이라는 생명체를 통해 민중의 건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작품이다. 시에서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짓밟는 권력, 곧 민중을 탄압하는 지배자적 힘, 독재권력과 외세를 의미한다.

풀은 바람에 눕혀져 울지만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 는 시인의 토로에는 사실적인 것과 염원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시 ‘풀’에는 수동적인 것 같은 민중, 시대에 순응하는 것 같은 민중이 결코 꺾이지 않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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