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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언론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뉴스 제작 혁신과 공익저널리즘 강화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의 대표 언론그룹 SPH미디어는 구글과 협력해 기자들의 AI 활용 능력을 높이는 한편,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언론의 편집 독립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아시아기자협회 전 회장인 싱가포르의 아이반 림이 SPH미디어의 변화를 통해 AI 시대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짚었다. <편집자>
[아시아엔=아이반 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즈 전 선임기자] 싱가포르의 대표 언론그룹 SPH미디어가 미국의 세계적 기술기업 구글과 손잡고 뉴스룸의 인공지능(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력의 핵심은 AI가 기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취재와 기사 작성의 효율성을 높이는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SPH미디어는 2026년 4월 17일 구글과의 전략적 협력을 발표했다. 협력 분야는 AI 역량 강화, 콘텐츠 제작과 유통, 차세대 언론인 육성, 독자와의 소통 확대 등 네 가지다. 기자들은 구글 클라우드와 제미나이(Gemini), 노트북LM(NotebookLM) 등 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해 취재자료를 조사하고 방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업무를 지원받는다.
AI는 연설문과 인터뷰 요약, 외국어 문서 번역, 그래픽 제작, 사실관계 검증 등에 활용될 수 있다. 기사에서 누락된 정보를 확인하거나 후속 취재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자의 판단을 돕는 도구다. 취재의 방향을 정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며 어떤 시각으로 기사를 작성할 것인지는 기자의 책임이다. 기사에 담기는 현장의 분위기와 인간적 감정, 문장의 개성 역시 기자가 만들어야 할 영역이다.
AI가 만들어낸 획일적인 문장이 아니라 취재자의 경험과 관찰이 담긴 기사가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 뉴스 서비스에서 청년 언론인 육성까지
SPH미디어와 구글의 협력은 뉴스 제작 과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과 새로운 광고 형식을 활용해 뉴스의 유통과 독자 접점을 넓히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싱가포르 도시철도(MRT) 일부 역의 디지털 화면을 활용해 주요 뉴스와 속보를 전달하는 구상이다.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일상 공간에서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쉽게 접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미래 언론인을 육성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SPH미디어와 구글은 학교와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콘텐츠 창작자와 예비 언론인을 육성하는 ‘뉴스 인큐베이터 프로그램(News Incubator Programme)’을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AI 활용법과 정보 검증, 디지털 뉴스 제작 방식 등을 배우며 미래 뉴스룸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 같은 협력은 영어신문 <스트레이츠타임스(The Straits Times)>를 비롯해 중국어신문 <연합조보(Lianhe Zaobao)>, 말레이어신문 <베리타하리안(Berita Harian)>, 타밀어신문 <타밀무라수(Tamil Murasu)> 등 SPH미디어의 다언어 매체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싱가포르처럼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사회에서 이러한 뉴스 서비스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소통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 지원 9억 싱가포르달러…공익저널리즘으로의 전환
SPH미디어의 AI 혁신을 이해하려면 싱가포르 언론산업의 구조적 변화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문산업이 디지털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수익성을 잃으면서 기존의 상업적 운영 방식으로는 언론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SPH의 언론사업은 2021년 비영리법인 형태의 SPH미디어트러스트로 분리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2년 SPH미디어트러스트에 5년 동안 최대 9억 싱가포르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연간 최대 1억8000만 싱가포르달러에 이르는 규모다. 정부는 기술 투자와 디지털 인재 육성, 뉴스룸 역량 강화, 언어별 매체 지원 등에 예산을 활용하도록 했다.
이 지원은 공익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역할과 연결돼 있다. 상업적 수익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신문이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지원 성과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며 디지털 독자 확대, 청년층 접근성, 다양한 언어·인종 공동체에 대한 뉴스 서비스 등을 주요 평가 항목으로 삼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뉴스의 생산과 확산도 중요한 과제다.
SPH미디어트러스트는 정부 지원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한편, 허위정보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하는 온라인 환경에서 공익적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 중심 보도와 편집 독립성의 문제
공익저널리즘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싱가포르 국민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뉴스를 우선적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과 경제, 교육, 의료, 교통, 주거 문제 등이 중요한 뉴스 의제로 다뤄진다. 주요 정책 발표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기사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되면 새로운 요금체계를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학생과 성인에게 각각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스트레이츠타임스>의 ‘Ask ST’ 같은 문답형 기사도 복잡한 제도를 시민들이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2026년 8월 23일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국경일 국정연설(National Day Rally)에서 가족과 출산 지원, AI 기술 활용, 장기적인 국토개발 등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주요 신문들은 이러한 정책이 국민의 삶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외신 보도에서도 싱가포르의 시각을 반영하는 경향이 강조된다. 국제정세와 주요 국가의 정책 변화가 싱가포르의 안보, 경제,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따른다. 싱가포르는 웨스트민스터식 의원내각제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 국가다. 여당인 인민행동당(PAP)과 야당이 유권자의 지지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을 받는 언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SPH미디어트러스트의 디지털 전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영진은 뉴스룸의 자율성과 편집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기술 혁신과 공익적 역할을 함께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술이 주인이 아니라 도구가 되게 하라”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언론인의 역할을 분명하게 설명한 발언이 나왔다. 2026년 7월 15일 싱가포르 프레스클럽 시상식에서 인드라니 라자 총리실 장관 겸 재무·국가개발 제2장관은 AI 시대에도 언론의 핵심은 인간의 전문성과 경험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기자의 지식과 취재원과의 신뢰관계는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숙련된 기자는 검색엔진에만 의존하는 사람과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라자 장관은 기술을 활용하되 기자의 고유한 판단과 표현능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술이 여러분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가 되도록 하십시오.”
이어 글의 힘과 문장의 아름다움,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깨달음을 주며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여전히 언론인의 손에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AI는 기사에 들어갈 숫자를 정리하고 문장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사람들의 감정,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일은 여전히 기자의 몫이다.
싱가포르 언론의 AI 실험은 기술을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언론의 신뢰와 전문성, 공익적 책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다.
그 성패는 결국 AI의 성능이 아니라 기자의 판단과 편집 독립성을 얼마나 충실하게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아시아엔 영어판 : Singapore Public Service Press & AI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