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사회칼럼

풍형예대(豐亨豫大)…북송은 왜 풍요 속에서 무너졌나

풍요를 태평의 증거로 착각한 궁정의 사치와, 그 틈을 파고든 외부의 위협을 함께 형상화한 이미지. 권중달 교수는 북송 휘종·채경 시기의 ‘풍형예대’가 풍요의 경계심을 잃게 만들었고, 그 결과 나라의 재물은 쌓였으나 미래를 대비할 능력은 약해졌다고 지적한다. (AI 생성 이미지)
[아시아엔=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삼화고전연구소 소장] 나라에 돈이 많아지면 그만큼 나라의 힘도 커질까. 풍요로운 미래도 보장될까. 생산과 교역이 늘고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커진 경제를 운영하려면 그에 맞는 사람과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의 성과를 다음 시대의 능력으로 바꾸어 놓아야 풍요도 이어 갈 수 있다. 돈이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초과세수 전망은 이 질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재정경제부가 2026년 9월 30일 발표한 국세수입 재추계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은 추경예산보다 63조 2천억 원 많은 478조 6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호조 등이 반영된 연간 전망이며, 이미 걷힌 세금의 최종 집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늘어난 재원을 어디에 먼저 쓰고, 미래를 위해 얼마를 남겨 둘지 판단하는 일이다. 현재의 생활을 개선하면서 앞으로 닥칠 경제와 사회의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송(北宋)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풍요로운 때에 놓치기 쉬운 이 문제 때문이다.

북송은 요(遼)와 전연의 맹(澶淵之盟)을 맺어 양국 사이의 대규모 전쟁 부담을 줄였다. 국경이 안정되는 가운데 농업과 상업이 성장하고 도시와 문화도 발달하였다. 축적된 부를 어디에 쓰고 어떤 사람들의 판단을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했다.

전연의 맹으로부터 약 한 세기가 지난 휘종(徽宗) 때, 재상 채경(蔡京)은 풍형예대(豐亨豫大)를 내세웠다. 『주역(周易)』의 풍괘(豐卦)와 예괘(豫卦)의 뜻을 끌어온 표현으로, 풍성하고 형통하며 안락하고 성대한 태평의 시대라는 의미다.

『주역』은 풍요를 말하면서 그 상태가 변할 수 있다는 경계도 함께 제시한다. 풍괘의 「단전(彖傳)」은 “해가 중천에 이르면 기울고, 달이 가득 차면 가려진다〔日中則昃,月盈則食〕”고 한다. 오늘의 문제에 비추어 읽으면, 여유가 있을 때 다음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경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채경은 이러한 경계를 뒤로하고 풍요롭고 태평한 시대라는 뜻을 앞세워 황제 휘종의 사치를 정당화하였다. 『송사(宋史)』 「채경전」은 오랜 평화로 창고가 가득하자 그가 풍형예대를 내세우며 재물과 관직을 함부로 사용했다고 비판한다.

휘종이 옥으로 만든 술잔을 내놓으며 지나친 사치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하자, 채경은 황제가 천하의 봉양을 누리는 데 그 정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취지로 대답하였다. 재물이 많다는 사실을 더 누려도 된다는 허락으로 바꾼 것이다.

궁궐과 정원을 꾸미는 사업은 부담을 키웠다. 기이한 돌과 나무를 운반하는 화석강(花石綱)에는 재물뿐 아니라 백성의 노동과 수송 수단도 들어갔다. 황실의 화려함을 위해 풍요를 만들어 내는 백성의 생업을 흔들었다.

휘종과 채경도 재정과 교육 등의 제도를 바꾸었고, 휘종 조정은 옛 영토의 회복을 추진했다. 다만 사업을 벌이는 것과 나라의 장기적인 안정을 준비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이를 지적하고 고칠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채경의 정치 운영은 그 통로를 좁혔다. 휘종의 승인 아래 원우당적(元祐黨籍)을 통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간당(姦黨)으로 규정하고, 그 자손의 관직 진출까지 제한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배제하면 그 사람의 경험과 능력도 쓸 수 없게 된다. 국가가 활용해야 할 인재와 의견의 폭을 권력자가 스스로 줄인 셈이었다.

그 사이 여진(女眞) 세력을 결집한 아골타(阿骨打)가 1115년 금(金)을 세웠다. 금은 1125년 요의 천조제(天祚帝)를 포로로 잡았고, 1127년에는 정강의 변(靖康之變)을 통해 북송을 무너뜨렸다. 금을 건국한 지 십여 년 만에 기존의 두 강국을 무너뜨린 것이다. 송 왕조는 남송으로 이어졌지만 중원의 지배를 잃었고, 휘종과 흠종(欽宗)은 포로가 되었다.

이 급변을 사치나 당쟁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금의 군사적 성장에 요의 내부 분열, 송이 금과 연합하여 요를 공격한 선택, 전쟁 중 지휘와 의사결정의 실패가 겹쳤다. 새 세력의 성장과 기존 국가의 판단 실패는 오랜 질서도 빠르게 바꾸었다. 창고에 쌓인 재물은 그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능력까지 보장하지 않았다.

오늘의 기술·산업 경쟁은 당시의 정복전쟁과 다르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더 빠르게 발전시키면 경쟁력은 약해질 수 있다. 지금 잘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경쟁에서도 앞설 것이라는 증명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은 일자리와 산업 구조, 국제 경쟁의 조건을 바꾸고 있다. 그 속도와 파급을 정확히 내다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준비할 미래는 오늘의 규모만 커진 세상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과 필요한 지식,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고 누구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해질지는 지금 다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최대한 폭넓게 모아야 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능력 있는 사람을 배제하면 아직 알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까지 줄인다. 지금의 권력자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능력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는 없다. 다양한 인재가 전문성과 경험을 발휘할 기회를 열어 두어야 한다.

사람을 모으는 데서 끝나서도 안 된다. 연구 성과와 현장의 경험이 정책에 반영되고, 다른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해결책을 함께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은 정책의 효과를 점검하고 제도를 고쳐야 한다. 지도자의 안목과 정보력도 이런 통로 위에서 길러진다. 인재의 능력이 국정에 쓰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일까지가 미래 대비다.

늘어난 세수는 그 준비를 할 기회다. 기초연구와 교육, 미래 인력 양성에 투자하고 새로운 산업을 뒷받침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일하는 사람들이 바뀐 기술을 배울 기회도 넓혀야 한다. 성장의 성과를 다른 기업과 지역으로 연결하고,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재취업을 돕는 것도 사회의 적응력을 키우는 일이다.

현 정부의 재정 운영도 이 기준으로 살펴야 한다. 어느 사업에 왜 재원을 배분하며 누가 집행하고 어떻게 성과를 점검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인재를 쓰고 연구를 지원할 때 정치적 친소보다 전문성과 공공의 필요를 앞세우는가. 정부 밖의 지식과 경험까지 활용하고, 비판을 받아들여 정책을 고칠 수 있는가. 돈을 배정했다는 사실보다 실제로 어떤 능력이 쌓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호황이 꺾였을 때 쓸 재정 여력도 남겨 두어야 한다. 일시적인 세수 증가를 계속될 수입으로 여기고 지출을 늘리면, 세수가 줄었을 때 필요한 투자와 민생 지원이 제약될 수 있다. 현재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지출은 필요하다. 미래를 준비할 여력까지 당장의 향유에 소진하는 태도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채경은 쌓인 재물을 황제가 더 누려도 된다는 이유로 삼았고, 정치적 배제는 국가가 쓸 인재의 폭을 좁혔다. 오늘의 정부는 늘어난 세수로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면서 미래의 변화에 대응할 능력도 키워야 한다. 정치적 입장을 넘어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고, 연구와 교육의 기반을 넓히며, 정책의 잘못을 바로잡을 제도를 갖추고 있는가. 호황이 꺾여도 필요한 투자와 민생 지원을 이어 갈 재정 여력을 남겨 두고 있는가.

현 정부의 재정 운영은 지금 얼마를 쓰느냐뿐 아니라, 그 지출로 미래를 준비할 어떤 능력을 쌓느냐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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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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