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학섭의 고려인청소년 ㉝]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새로운 시작…고려인학교를 꿈꾸며

199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나는 그곳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질 때면 교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뜨겁게 응원했다. 박찬호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처럼 느껴졌다. 태극기를 흔드는 교민들은 먼 타국에서도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의 응원단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우리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가 어디에 있든 다시 뜨겁게 피어나는구나.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조선 사람들은 힘이 없었다. 그중에는 자신의 뜻과 아무런 관계없이 강제 이주 열차에 실려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화물열차에 몸을 싣고 6,400km의 대륙을 지나 낯선 땅에 내던져진 사람들. 그 수가 17만 명이 넘었다. 우리의 조부모와 이웃, 그리고 조상의 친구였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고려인이었다.

2019년 8월,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 첫 입학생인 고려인 청소년들이 찾아왔다. 그 아이들은 분명 우리 민족의 후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낯선 외국인처럼 바라보았고,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차별의 시선을 견디며 학교에 왔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체념과 기대가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혹시 새로운 길이 열릴까?’ 하는 희망이 그 안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안중근 뮤지컬에 출연하는 로뎀 학생들

그 아이들 가운데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제니와 알렉스도 있었다. 얼마 뒤 두 아이는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고 학교에 와 자랑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아이들의 눈길에는 부러움이 어린 듯했다.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어도 누군가는 국적을 얻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그 작은 주민등록증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한국 체류 자격은 태어난 나라와 부모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2019년 당시에는 F-1 비자로 체류하다 만 19세가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도 있었다. 고려인에게 본국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이지만,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 다시 비자를 받아야 했다.

김한나(율리아, 당시 만 19세)도 그랬다. 학교를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한 아이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마음이 아팠다. 한국에서 살아갈 꿈을 품었던 아이가 서류 한 장의 벽 앞에서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을 대한민국의 품으로 받아들이는 일 앞에서는 이토록 힘들어할까?

그 질문을 품고 우리와 비슷한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곳은 이스라엘이었다.

로마제국과의 전쟁,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유대 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고향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귀환의 역사를 열었다.

이스라엘은 ‘귀환법’을 통해 세계 각지의 유대인과 법이 정한 가족 구성원들이 이주하고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올림’에게는 초기 정착과 생활을 지원하고, 세금과 주택 마련을 돕는 여러 제도를 두었다. 의료보장과 히브리어 교육 과정인 ‘울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녀들의 교육과 장학 제도 역시 뒷받침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와 고국을 잇는 이러한 정책은 흩어진 공동체의 역사를 연결하고, 다음 세대가 언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돕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원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아프면 치료받고, 자기 이름과 정체성을 당당하게 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교육환경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은 출발선에 서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아이들은 백신 접종을 받는 일조차 순탄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백신뿐 아니라 독감 예방접종에서도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곤 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제도의 바깥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우리 학교가 고려인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 자기 삶의 정상에 오르는 ‘꿈마루’가 되기를 바란다. 외국인이라는 시선에 갇힌 아이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그 꿈을 품고 나도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운동장 마련을 위해 기도하는 학생들

얼마 전, 우리는 2년 전부터 기도해 온 운동장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점심 급식을 마친 뒤 아이들과 찬양단을 중심으로 함께 기도하곤 했다. “우리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갖게 해 주세요.” 아이들은 운동장을 꿈꾸며 그 땅을 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로 품었던 운동장이 눈앞의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 우리 학교에는 농구장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농구장을 넘어 축구장이 있는 학교를 꿈꾼다. 더 많은 아이들이 찾아와 배우고, 뛰고, 꿈을 키우는 학교를 꿈꾼다. 민족사관학교처럼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키워 주는 고려인학교를 꿈꾼다. 한때 차별의 시선 속에 서 있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당당히 그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품고 나아가려 한다. ‘이레학교’라는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주신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너희를 위해 준비해 주셨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고, 자신이 누구인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돕는 학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첫걸음을 우리는 지금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서 내딛고 있다.

미래를 함께 꿈꾸는 학생들과 소학섭 필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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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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