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소학섭의 고려인청소년㉞]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너희가 주인공이야”

전교생 찬양

축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반별 발표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축제는 학교의 큰 행사이자 모두가 함께하는 잔치다. 2021년부터 시작된 축제는 아이들이 갈고닦은 한국어 실력으로 연극과 중창, 합창을 선보이는 학예회이기도 하다. 외부 공연팀의 찬조출연까지 더해져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이자, 아이들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올해 사회를 맡은 이리나와 막심은 한쪽에서 서로 대본을 맞춰 보며 연습에 한창이다. 훈민가반 김미정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동작도 갈수록 커진다. 무대 동선을 알려주고 있지만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매번 힘든 시간을 보내신다. 올해 훈민가반이 준비한 공연은 연극 *<금도끼와 은도끼>*다. 서툰 발음으로도 씩씩하게 연극에 도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풍물놀이 공연으로 이날 행사의 문을 열었다.

훈민나반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연극과 노래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신재은 선생님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학교에 나와 아이들과 호흡을 맞춘다. 아이들의 대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아려 온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기대했던 사람도, 걱정했던 사람도, 아무 생각이 없던 사람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이어진다.

“한국에 간다. 기대되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슬펐고, 어떤 아이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한국말을 배울 수 있을까? 새로운 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아무것도 잘되지 않아 다시 돌아가게 되면 어떡하지?”

이 나레이션은 아이들의 내면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불안할까? 나는 학교를 세운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 한국 사회의 이방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주체로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품어 온 사명이기도 하다.

훈민다반은 우리 학교에서도 한국어 실력이 좋은 반이다. 배운 문법을 활용해 ‘한국어 생존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니 무척 흥미롭다. 백은미 선생님의 자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기대가 된다. 유창한 한국어로 아이들은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 재작년에는 안중근 뮤지컬을 선보였는데, 해마다 쌓여 가는 아이들의 실력은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되곤 한다.

나는 학교를 지키느라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다. 관공서나 기업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인맥을 쌓는 일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다 보니 그렇게 움직일 여유가 없다. 후원사 없이 축제를 준비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다. 무대와 음향, 야외 천막과 의자, 먹거리, 찬조출연자들의 소정의 출연료까지 챙기려면 대략 천만 원이 든다. 부담이 작지 않지만, 그래도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어가 서툰 우리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국 학교의 무대에 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년 말해 주고 싶었다. “너희가 오늘의 주인공이야.” 아이들 스스로 “내가 주인공이야”라고 느낄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바탕에는 복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지역주민과 고려인동포 200여명이 한자리에

이번 축제에는 한문화재단이 후원해 주셔서 이중언어 발표회에 필요한 비용 250만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바자회를 하고 싶었는데 물품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아침 일찍부터 조이어스의 박준섭 장로님과 노승준 예비장로님이 다양한 물품을 한가득 싣고 와 주셨다. 조이어스의 박종렬 담임목사님과 이혜진 부목사님은 늘 이곳을 선교의 후방기지로 여기며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다. 신명숙 집사님과 지인들도 화장품과 옷을 준비해 주셨다. 어느새 풍성해진 물품들. 기도하면 된다고 믿으면서도 왜 그토록 걱정했을까. 문득 나는 믿음이 부족한 목사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필요한 손길을 보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손님을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축제 당일, 각 부스는 찾아온 손님들로 가득 찼다. 대성공이었다. 먹거리는 아내와 양 권사님, 그리고 내 여동생이 맡았다. 전도할 대상자인 강경희 여사님도 손길을 보탰다.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은 줄을 섰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다녔던 고려인 아이들도 이제는 청년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서현이와 스베타는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아이들이 명절에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반가웠고, 마음이 뭉클했다.

오후 1시 50분이 되자 멀리서 풍물놀이 소리가 가을 하늘을 가르며 들려왔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관객들의 눈과 귀가 그쪽으로 모였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 마을의 70대, 80대 어르신들이 학교 축제의 문을 여는 무대에 나선 것이다. 한국 문화의 한 부분을 보여 주는 그 공연을 담으려 200여 명의 관객이 휴대전화를 높이 들었다. 한국어 사회를 맡은 이리나가 더 뜨거운 박수를 부탁하자, 객석은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우리들의 이야기’ 훈민나반 연극

이어서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고려인 가수 이샤샤도 재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아이들의 무대마다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사회자가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나를 소개했다. 모든 아이와 선생님이 무대 위에 함께 섰다. 우리는 ‘꽃들도’를 불렀다.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거쳐 간 학생들은 이 찬양을 마음에 담고 세상으로 나간다. 그 목소리가 맑은 가을 하늘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우리는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렸다.

가을 하늘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축제의 자리는 빈 곳 하나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함께 찬양을 듣고 손뼉을 쳐 주신 분들과 우리는 마지막 시간을 나누었다.

오늘 고려인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다. 그 기억이 앞으로의 한국 생활을 견뎌 내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어디에 서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열어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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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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