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 책 『쉼 숨 섬』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출까?” 했더니 웃으며 “형님 마음대로 하세요” 한다. 보도자료는 이미 받아놓았지만 그것을 옮기고 싶지는 않았다. 왜 이 책을 썼는지, 무엇보다 ‘쉼 숨 섬’ 세 글자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해서요.”
김 기자가 지난 2년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25편, 27명의 인터뷰가 책에 담겼다. 두 편에는 부부가 함께 등장한다. 성직자와 수행자, 예술가와 젊은 세대 등 살아온 길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지치고 흔들리는 순간을 지나 자기 마음을 다시 들여다본 사람들이다.
제목부터 물었다. ‘쉼’은 먼저 멈추어 쉬는 것이다. ‘숨’은 남의 속도가 아니라 자기 호흡을 되찾는 일이다. 그렇다면 ‘섬’은 무엇인가. 나는 처음에 외딴섬 같은 뜻인가 싶었다. 김 기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걸 통해서 스스로 스탠드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고립된 섬이라기보다 자기 힘으로 다시 서는 것, 흔들릴 때 돌아갈 수 있는 자기 삶의 중심에 가깝다. 쉬고, 자기 숨을 찾고, 다시 자기 발로 서는 과정. 제목 세 글자에 책 전체가 들어 있었다.
김한수 기자와의 인연은 오래됐다. 2009년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인 이란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 변호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가 기억난다. 당시 김 기자는 이한수 기자와 함께 그녀를 인터뷰 했다. 관련 책과 자료를 미리 읽고 질문을 준비해온 것이 금세 보였다. 오현 스님은 인터뷰 기사를 읽고는 “역시 김 기자가 쓴 게 다르다”고 극찬했다. 취재 대상에 대해 미리 읽고 알고 묻는 기자라는 말이었다. 그때 받은 인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 인연은 만해대상으로 이어졌다. 김 기자는 13년째 만해대상 관련 일을 직접 맡아왔다고 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사람을 서둘러 규정하기보다 먼저 듣고 묻는 기자라는 생각을 한다. 『쉼 숨 섬』에도 그런 취재 습관이 배어 있다. 누군가에게 답을 가르쳐주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어떻게 흔들렸고 무엇을 붙잡았으며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를 듣는다.
솔직히 말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 거의 모르겠더라.” 그런데 읽어보니 오히려 그 점이 괜찮았다. 유명한 사람이라서 읽는 책이 아니다.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 사람이 견딘 시간과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대목이 있다. 25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마음 가는 사람부터 한 꼭지씩 읽으면 된다.
글들도 매끈하게 포장돼 있지 않다. 나는 그런 글을 좋아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어떻게 모두 반듯하고 완벽할 수 있겠는가. 조금 투박하더라도 그 사람이 실제로 한 말과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는 편이 낫다. 『쉼 숨 섬』의 여러 이야기도 그렇다. 종교와 명상, 수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하나의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쉬고, 자기 숨을 찾고, 다시 서는 이야기다.
통화를 마칠 무렵 김한수 기자가 갑자기 말했다. “아이구, 쉬세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일하고 계세요.” 내가 “재밌으니까 하지. 재미없으면 하겠냐?” 했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형님도 쉼 하세요, 쉼.”
전화를 끊고 나니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쉬지 못한다. 쉬면 뒤처질 것 같고, 잠깐 멈추면 뭔가 놓칠 것 같다. 그러다 남의 속도에 맞춰 뛰느라 내 숨이 어떤지도 잊는다.
『쉼 숨 섬』은 거창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먼저 쉬어보라고 한다. 자기 호흡을 되찾아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숨을 되찾았다면 다시 자기 힘으로 서보라고 한다.
쉼, 숨, 섬.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이 세 단어가 가슴에 남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첫 번째부터 연습해야 할 모양이다.
“형님도 이제 좀 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