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화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33] 안중근 루트를 걷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르빈까지, 동북아 역사의 길

포그라니치니 간이 정거장.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정거장이다. 필자 일행이 하르빈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 왔듯이.

오늘은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북만주 하르빈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새벽부터 굵은 빗줄기가 뿌려댄다. 여행자가 가장 싫어하는 강한 빗줄기를 만났다.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자의 모습은 고행길의 수도자 같다.​

이 길을 꼭 밟고 싶다는 우리의 호기심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이 길을 가리켜 ‘안중근 루트’라 부르기도 한다. 1909년 10월 한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망국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르빈으로 이동한 루트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 길의 역사성은 안중근의 영웅적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안중근 의거, 러시아에서 시작 하르빈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우리의 선조 고구려의 유민은 그 수도를 이 루트의 중간지대인 북만주의 무단장(목단강) 영안현에 정했다. 수도를 상경(상경용천부)으로 정하고 북만주의 광활한 지역을 통치했다.​

16세기 중반부터 이 지역(요녕성 푸순)을 무대로 활동하던 여진족의 빼어난 전략가 누루하치(1599-1626, 청 태조)는 팔기군을 이끌고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 후손 강희제에 이르러 아무르강(흑룡강)에서 서쪽의 신강성까지 광활한 영토가 개척되어, 현대 중국의 모태를 이루게 된다.

​16세기부터 동진하던 러시아제국은 시베리아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며, 유라시아를 넘어 대제국을 개척했다. 그들은 19세기 중반부터 아무르강 북쪽과 우수리강 동쪽을 중국으로부터 침탈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는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르빈-치타를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중국 구간을 개통시키며 동방진출의 정점을 찍었다.

​일제에 무너진 왕국 조선에서는 망국의 한을 지닌 수많은 망명객들이 연해주와 북만주로 잠입했다. 그들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독립과 혁명의 가시밭길을 걸었고, 그 가족들이 어버이를 찾아 이별과 눈물의 상봉을 했다. 혁명가 이동휘, 이갑, 소설가 이광수, 헤이그 특사 이상설, 아무르의 영혼이 된 여인 김애리(김 알렉산드라), 그리고 금번 탐사길을 결심하게 해준 혁명가 김경천과 그 부인 강정화 등 수많은 한인독립투사들의 고난과 눈물의 길이었다.

​그렇다! 현지에서 바라본 이 길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핵심 루트였다. 북만주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거나, 반대로 태평양(동해)에서 시베리아로 진격하는 국가간의 핵심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곳은 한-중-일-러가 만나는 대륙의 역사적 교차로였다.

역사 여행가에게는 길과 지역(선과 공간) 자체가 흥미를 일으키는 가슴 벅찬 길일 수밖에 없었다.

우수리스크 시내 국제버스터미널은 청춘들의 꿈을 담아낸다.

최초 계획은 우수리스크에서 국제열차를 타고 하르빈까지 이동하려 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소 관계가 악화되고, 북한의 참전 등으로 긴장이 높아져 계획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버스를 이용해 소만국경 수이푼허까지 이동하고, 수이푼허에서 하르빈까지는 동중철도(시베리아 횡단 동청철도, 빈쑤이선)를 이용하기로 했다.

수분하(수이푼허)행 국제버스 아침 6시발 첫차를 타기 위해서 서둘렀다. 호텔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에 짐을 싣고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국제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름은 거창하게 국제버스터미널이지만, 시설은 낡고 우중충하며, 규모는 한국의 중소도시 버스터미널 정도였다.

새벽 어둠이 남아있는 국제버스터미널 대합실

예약해둔 표를 찾고 대합실에서 약 30여 분을 기다려야 했다. 백팩을 등에 진 여행객 전부가 러시아 백인풍 젊은 남녀들. 궁금증이 떠올랐다. 덩치가 큰 저들은 새벽부터 왜 북만주 땅으로 이동할까?

오전 7시경 경계심과 호기심이 혼재한 우리는 국제버스에 몸을 싣고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아침부터 시 외곽은 중국으로부터 밀려드는 화물트럭과 차량으로 인해 정체가 빚어지고, 도로는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다. 거대한 중국경제가 밀려들며 동북아에 격랑을 일으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흥은 러시아와 주변국가 모두를 긴장시키고, 세계의 패권국 미국까지도 심각한 파장에 직면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이푼허 행 국제버스

시 외곽을 벗어난 버스는 광활한 평야지대를 지난다. 이 평야지대가 고려인(러시아 이주 조선인)들의 격렬한 삶과 투쟁이 전개되는 이른바 추풍(수이푼허) 지역이다.

1시간 정도 지나면서 차량은 약간의 경사진 구릉지대를 오르고 주변은 산악으로 연결된다. 이곳을 무대로 조선 독립군 부대가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만주의 군벌과 마적들은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았다. 군사상 요충지였다는 얘기다.

러시아의 국경 부락 포그라니치니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는 출입국사무소 국경 관리들의 출근시간인 9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러 지역으로부터 출발한 국제버스가 집합하는 장소다.

국경 부락 포그라니치니는 안중근이 하르빈으로 갈 때 잠시 머물렀던 기차역이었다. 여기서 안중근은 유동하(1892-1918)라는 고려인 청년을 접선한다. 그리고 유동하는 18세의 어린 나이로 러시아어 통역과 연락책을 맡아 세기의 암살사건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참여하게 된다. 포그라니치니는 예나 지금이나 여행객의 임시 대기장소였다.

​30여 분 이상을 영문도 모르는 채 버스 안에서 머물다가 다시 국경출입국사무소로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국경에서 세관검사와 출국검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버스들은 서둘러 출발한 것임을 알게 된다. 여행객의 초조함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관리들은 9시에 맞춰 출근 중이었다.

설렘과 기대, 청년인력의 국제 이동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는 항상 긴장된다. 국제공항은 그 절차가 세팅되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만, 차량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통과하는 육상 입국의 경우는 그야말로 경찰관 앞에 선 피의자 격이다. 버스에 탄 승객 모두를 격리시켜 짐과 세관 검사를 한 후, 다시 출입국 심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입국심사보다 출국절차가 더욱 까다롭다. 공산주의 시절 외국인을 감시하고 시민의 이동을 사찰하던 ‘검은 절차’가 음습하게 남아있었다. 체류일자(여행일자)가 1주일 이상이라면 거주지마다 등록을 한 후, 이 확인증을 출국 때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도 총 체류일자가 10일 이상이고, 일반주택에서 민박을 2일 했기 때문에 이 확인증(이민국, 우체국, 정부종합민원센터에서 발행)이 필수적이었다.

​또 호텔에서 준 거주지 등록증, 그리고 기차에서 숙박했다는 증명인 기차표를 별도의 케이스에 보관하여 출입국관리에게 제출해야 한다. 여기에서 일단 제동이 걸리면 예약한 기차나 비행기 시간에 지연 도착되니 가슴이 놀라는 건 다반사다.

​초조한 심정으로 러시아 출국을 완료하고 다시 중국 수분하 출입국관리소로 걸어서 이동했다. 수분하 출입국관리소는 러시아의 초라한 단층 건물에 비하면 호화로운 수준이었다. 중-러 간에 경제력의 격차가 한마디로 입증된다.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를 자랑하듯 중국은 절차가 신속했다. 일단 영어가 통하며 관리들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 러시아와는 큰 차이였다. 2024년 11월 중국이 한국인 관광객에 대해 한시적 비자면제 조치(2026년 12월까지)를 했다. 따라서 우리는 비자 없이 입국했는데 이곳 출입국사무소는 그 내용을 모르고 있어, 무비자 입국으로 입국 보류된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모두 통과를 했는데 우리와 벨라루스 여행객 부자가 별도 구역으로 분리되었다. 아마도 비자면제 조치 이후 러시아에서 버스를 타고 중국 수분하로 입국하는 한국인 케이스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만 했다.

10년 전 실크로드 여행 당시 아제르바이잔 입국 때와 유사한 케이스였다. 황당했지만 그 내용을 입국관리들에게 엄숙하게 어필했다. 문제는 수분하역에서 하르빈행 열차를 예약한 시간(오전 10시45분)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는 것이었다.

수이푼허 열차역, 소만국경의 브리지 역할을 한다.

상부에 묻고 확인하는 절차가 30여 분 계속된 후 입국심사가 간신히 끝났다. 통과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수분하 열차역이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인접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뿔사, 그것이 착오였다. 수분하역은 여기서 택시로 20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은 때로는 심한 긴장과 해결의 과정이다. 확인, 재확인 후 택시를 잡아타고 수분하(수이펀허) 열차역에 도착했다. 동행한 친구 이호준군이 없었다면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드디어 수분하역에 도착했다. 대역사는 위용을 과시하며 나그네들을 품어 앉는다.

아! 이제 우리는 예정시간에 하르빈으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큰 숨을 내쉬었다.

필자가 수이푼허역사에서 하르빈행 열차를 기다리며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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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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