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화려한 외교 무대이기 이전에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엄연한 ‘업무 출장’이다. 대기업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해서 계열사 사장단이 회사 로비나 공항 출국장에 일렬로 늘어서서 배웅하지 않듯, 대통령의 출장 역시 담담하고 실무적이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항 활주로의 풍경은 수십 년째 과거의 시간대에 멈춰 서 있다. 대통령이 비행기에 오르내릴 때마다 여당 대표, 장관, 참모 등 국정을 돌봐야 할 고위 인사들이 줄지어 늘어서는 풍경, 즉 공항 영접과 환송 도열 문화 이야기다.
비단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여야 당대표나 고위 공직자들의 출입국 풍경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이 해외나 지방 출장을 갈 때면 공항 출입국장에 수많은 당직자와 하위 공무원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며 상전 모시듯 영접하는 구태가 여전하다. 이 모두가 당장 없애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이러한 공항 도열은 명백한 행정력 낭비이자 군사정권 시절 정착된 권위주의의 잔재다. 과거 통신 기술이 낙후됐던 시절, 권력 공백을 방지한다는 명분이나 권력자에게 충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려던 ‘집단적 충성 경쟁’의 유산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항 활주로에서 펼쳐진 정청래 대표의 ‘90도 폴더 인사’ 장면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알려지며 국제적인 망신을 사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을지 몰라도 정치 문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전 세계에 고스란히 보여준 서글픈 단면이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과도 실시간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화상회의를 하고,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현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지휘할 수 있는 첨단 기술 시대다. 전용기 내부나 이동 중에도 화상통화와 모바일 업무 시스템이 일상화된 오늘날, 국가의 중책을 맡은 핵심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단 몇 초의 ‘얼굴 도장’과 악수를 위해 공항까지 왕복 시간을 허비하며 활주로에 서 있는 모습은 시대착오적이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오히려 민간 영역의 글로벌 리더들은 권위의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진 지 오래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과거 회사 소유의 전용기 3대를 모두 매각하고, 해외 출장을 다닐 때 특별한 수행 인력 없이 직접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을 걸어 나오는 모습이 여러 차례 보도되며 화제를 모았다. 세계 AI 시장을 뒤흔드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역시 격식 차린 정장 대신 시그니처가 된 가죽 재킷 하나만 걸치고 자유롭게 전 세계를 누빈다. 현대는 이토록 실용과 효율이 권위를 압도하는 시대다. 민간 기업들도 이처럼 소탈하게 실리에 집중하는데 국민의 혈세로 움직이는 정치권과 관료 사회가 여전히 낡은 의전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 원수들이 보통 임기 중 수십 차례 이상 해외 순방길에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낭비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 기간 중 총 58회의 해외 순방을 다녀왔다. 5년 임기 동안 수십 차례에 걸친 출입국 때마다 이 모든 허례허식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면 그것이 다 국력과 행정력의 손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미 세계 무대를 주도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는 이러한 정치적 도열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유럽의 정상들이 전용기에 오를 때 공항 활주로에는 오직 영접 기지 사령관이나 보안 책임자, 비행기 운항 관련 필수 참모 등 실무자들만 나와 철저히 업무적으로 출입국 절차를 지원할 뿐이다. 여당 대표나 내각의 장관들이 대통령 배웅을 위해 공항에 나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권력의 정당성이 시스템과 법치에서 나온다고 믿기에 굳이 고위 관료들을 줄 세워 외견상의 격식과 권위를 과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불합리한 관행을 두고 누가 시작했고 누가 유지했는지를 따지는 정치적 공방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공항의 환송·영접 도열에 대해 평소 부정적이고 불편하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최고 권력자가 결심하면 하루아침에도 없앨 수 있는 관행이기 때문이다.
이 불합리한 관행은 굳이 언론을 통해 뒤늦게 불필요한 말을 보태거나 대대적인 정치적 구호로 내세울 필요가 없다. 과거 탁현민 전 비서관 같은 의전 기획자들의 논리를 빌려 제3자들이 ‘맞다, 틀리다’ 왈가왈부하며 소란스러운 논쟁을 벌일 영역도 아니다.
그저 최고 권력자가 의지를 가지고 소리소문없이, 실무적으로 제도를 바꾸어 없애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대통령이 출국할 때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참모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출발하면 될 일이며, 공항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실무 가이드라인에 맞춰 조용히 비행기에 탑승하면 끝난다. 당대표나 고위 공직자들 역시 요란한 마중과 배웅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면 될 일이다.
허례허식을 과감히 걷어내고 실무 중심으로 국정을 전환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본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면 권력의 무게를 보여주는 방식 역시 성숙해져야 한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공항 활주로 도열을 전면 폐지하고 서구식의 철저한 실무형 의전으로 전환하라. 국가 원수와 지도자들의 권위는 길게 늘어선 수행 인력이나 굴종적인 90도 인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허례허식을 과감히 철폐하고 오직 실무와 국익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국정 운영,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권위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