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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만드는 이유…누군가가 까닭 없이 싫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까닭 없는 미움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요 15:25). 그런데 예수님은 까닭 없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까닭 없는 미움에 그분이 내놓으신 답은, 까닭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미움 처방전입니다.-본문에서


*잠깐묵상 | 시편 35편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시 35:7)

미움에 원인이 있다면, 그 원인을 해결하면 미움도 풀립니다. 내 잘못이면 사과하면 되고, 오해라면 풀면 되고, 이해관계가 얽혔으면 협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까닭 없는 미움에는 답도 없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한 짓이 밉다’가 아니라 ‘네가 밉다’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미움에 이유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요? 이유가 미움을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미움이 이유를 만드는 걸까요? 신기한 건 미움은 언제나 이유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다 보면 반드시 이유가 생깁니다. 이유가 있어서 미워한다기보다, 미워서 이유를 만들어 냈다고 보는 게 정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움 앞에서는 상대의 선의마저도 미운 이유가 됩니다. 시편 35편에서 다윗이 가장 괴로워하는 지점이 그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이 병들었을 때 베옷을 입고 금식했습니다. 그들의 일을 자기 가족의 일처럼 여겼습니다(시 35:13-14). 그런데 정작 자기가 넘어지자 그들은 도리어 모여서 비웃었습니다.

선해서, 착해서 미움을 사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선함을 싫어할 수 있을까요? 잘해준 것이 어떻게 미운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셈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속셈이 있는 사람은 다루기 쉽습니다. 뭘 원하는지 알면 손에 들어옵니다. 이해관계로 엮으면 통제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 속셈이 없는 사람은 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손해를 감내하는 사람은 이해관계로 엮을 수도 없습니다. 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싫은 것입니다. 내 악의로 그의 선의를 통제할 수 없어서 미운 것입니다.

상대의 선의는 내 속에 숨겨둔 악의를 자꾸 드러냅니다. 그가 내 악의를 고발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선의를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변의 악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그 사람이 거슬리는 게 아니라, 그 앞에서 위축된 나 자신이 거슬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누군가가 이유 없이 싫다면 빛으로 드러난 내 민낯이 싫은 것 아닐까요?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미움에도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까닭 없는 미움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요 15:25). 그런데 예수님은 까닭 없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까닭 없는 미움에 그분이 내놓으신 답은, 까닭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미움 처방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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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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