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올림픽공원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패가망신’ 위협이 아니라 공정한 책임이다

주말인 13일 낮 올림픽공원 풍경. 벽에 붙은 구호들은 대부분 온건하고 절제돼 있다. 사진 왼쪽에 아빠 손 잡고 나온 아이와 오른쪽 시민과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여경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사진 이상기 기자>

해외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올림픽공원 청년 시위에 대해 “시위 현장에서 욕설·감금·폭행이 일어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은 반사회적 행태”라고 연이어 언급하자,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옆에서 불법 행위에 동조했다가 공범으로 적용될 경우 패가망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패가망신(敗家亡身).”

집안이 무너지고 몸을 망친다는 이 섬뜩하고 원초적인 단어가, 뒷골목의 협박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

올림픽공원에서 잃어버린 참정권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향한 경고였다.

“아무 생각 없이 불법 행위에 동조했다가 공범이 되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

상식의 저울 위에 이 발언을 올려놓고 차분히 따져보자. 국가의 무능과 헌법기관의 파행으로 투표용지가 부족해졌다.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주권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투표소 현장에서 행정 실패로 훼손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사태가 사실이라면,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주권자의 권리 행사에 차질을 초래한 선거관리기관과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평가가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권리 회복을 요구하며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는 ‘특수강요’와 ‘업무방해’라는 형사적 프레임이 먼저 적용되고 있다. 헌법적 문제 제기보다 처벌 경고가 앞서는 모습에서 많은 시민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 신속한 경고의 이면에는 공권력의 ‘선택적 분노’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과거 대규모 노조 집회와 물류 대란 사태 당시 공권력은 오랜 시간 대화와 협상을 우선시했다. 국가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상황에서도 강경 대응보다는 조정과 중재가 강조됐다.

반면 올림픽공원 시위에는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강한 경고 메시지가 등장하고 있다. 법 집행의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진보 성향 단체의 집회에는 인내와 협상이 우선되고, 정치적 색채가 다른 시민 집회에는 엄격한 경고가 먼저 등장한다면 국민은 공권력의 중립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경찰은 특정 정권이나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조직이 아니라 법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공권력은 어느 진영에도 기울어 보이지 않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더욱 실소가 터지는 것은 ‘패가망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기시감 때문이다.

“한국인을 건드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과거 정치권에서 등장했던 이 표현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강한 언사가 아니라 일관된 원칙이다. 외부의 위협 앞에서도, 내부의 갈등 앞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때 비로소 국가의 권위는 설득력을 갖는다.

적대 세력 앞에서는 신중하고, 자국민을 향해서만 강경한 모습으로 비친다면 공권력은 존중보다 불신을 얻게 된다.

도둑을 잡아야 할 경찰이 도둑의 문지기로 비쳐서는 안 된다.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침묵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패가망신’이라는 위협이 아니다.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일관된 법 집행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며, 공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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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음악감독, '낙원전파사' 프로듀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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