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충북 영동 ‘민주지산 위령탑’ 앞에서…절대충성과 절대복종 사이

민주지산 특전대원 추모탑 <사진 황건>

충북 영동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민주지산 순직장병 위령탑에 들렀다. 위령탑에는 1998년 봄, 폭설과 강풍 속에서 순직한 특전사 장병 여섯 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대대 종합전술훈련의 마지막 과정인 천리행군 중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저체온증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 나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군인들이었다. 위령탑에는 ‘절대충성, 절대복종’, 그리고 특전사의 상징과도 같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그 문구를 읽으며 문득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날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강한 정신력이었을까?

민주지산 특전대원 추모비 <사진 황건>

나는 군의관으로 근무했고, 지금도 군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다. 의사의 눈으로 보면 민주지산 사고는 영웅담 이전에 저체온증이라는 의학적 재난이다. 저체온증은 의지력으로 극복하는 병이 아니다.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오한이 생기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말이 어눌해진다. 더 진행되면 방향감각을 잃고 의식을 잃는다. 이 과정은 계급도, 용기도, 정신력도 구분하지 않는다. 특전사 장교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지산 특전대원 추모비 <사진 황건>

그래서 위령탑 앞에서 나는 ‘절대충성’보다 ‘절대복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물론 충성은 군인의 중요한 덕목이다. 국가와 국민,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대한 헌신 없이는 군대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절대복종은 다른 문제다.

모든 조직에는 멈춰야 할 순간이 있다. 특히 인간의 생리학이 한계에 이르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는 불가능한 임무를 창의성과 투지로 극복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물리법칙과 생리학까지 극복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비에 젖은 채 강풍과 폭설 속을 행군하는 병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위험을 인식하는 지휘관의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지휘관은 부하들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 전진해야 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수술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술을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계획을 변경할 것인지는 집도의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지나친 집착은 때로 환자를 위험하게 만든다. 군대도 다르지 않다. 임무 완수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지만, 그 의지가 현실에 대한 판단을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민주지산 특전대원 위령비 <사진 황건>

민주지산 사고 이후 군은 한랭손상 예방지침을 강화하고 혹한기 훈련 체계를 개선했다고 한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매뉴얼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다.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 ‘특전사라면 버텨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때로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위험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위령탑을 떠나기 전 다시 여섯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 되면 되게 하라’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안 되는 상황을 알아보는 것’, 그리고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군인에게 충성이 필요하듯, 지휘관에게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민주지산 특전대원 추모비 <사진 황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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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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