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자신의 삶만을 위해 살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마음은 흔하지 않기에 더욱 귀하고, 그 손길은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말이 있다. “받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지 말고, 주는 데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언젠가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션님이었다. 하랑이의 아버지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의 상징처럼 알려진 분이었다. “목사님, 한강에서 아이스버킷 런을 하는데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학생들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실 수 있을까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마라톤 초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루게릭병원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고, 15년간 병원 건립을 위해 각종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 그리고 201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2018년 국내에 도입해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대중에게 알리고 참여를 이끌어 온 션님은 218억 원의 후원금을 모아 병원을 준공한 선한 영향력의 아이콘이다. 그런 분이 우리 아이들을 초청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경험하고, 선한 영향력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선한 영향력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있고, 그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 힘을 느끼기를 바랐다. 또 한편으로는 서울까지 가는데 마라톤만 하고 돌아오기에는 아이들에게 너무 아쉬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63빌딩 방문도 함께 계획하게 되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위해 서울에 갈 생각을 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한강까지 가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버스를 대절해야 했고, 그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또한 우리 아이들 중에는 토요일이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많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린이집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아이들이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은 이들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참가할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서울에 간다는 것은 단순히 버스에 올라타는 일이 아니다. 한강에서 열리는 아이스버킷 런은 아침 10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했고, 안성에서 출발하려면 오전 8시에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러려면 아이들은 더 이른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까지 오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참가 신청을 받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위대한 고려인이다. 너희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랑이와 지성이도 함께 뛴다는 이야기를 듣자 참가하겠다는 아이들이 40명이 넘었다. 버스 한 대만 대절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결국 40명으로 인원을 정하고, 전동기 선생님, 이서현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43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계획이 하나씩 더해질수록 예산도 커졌다. 버스 대절비와 간식, 식사, 63빌딩 입장료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하지 못한다. 부탁한다고 해서 모두가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비전캠프를 위해 처음으로 주변 분들께 후원을 부탁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셨다. 그래도 적지 않은 개인 비용이 들어간 뒤였다.
그래서 이번 서울 나들이는 나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초청해 주신 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경비 때문에 가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렵게 지성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마 처음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청한 나의 목소리는 매우 미안했고,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늘 “이사장님,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꼭 말씀해 주세요”라고 하셨기에 그 말에 힘을 얻어 부탁을 드렸다. 지성이 어머니는 따뜻한 마음으로 기꺼이 도와주셨고 점심도 제공해 주셨다. 나머지 간식과 63빌딩 입장료는 아내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하나씩 준비가 채워졌고 이제 남은 것은 출발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운동장이 없어 체력이 걱정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3km나 5km 정도만 뛰어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랑이와 지성이가 10km를 뛴다는 말을 듣고 우리 아이들도 자신들도 10km를 뛰겠다고 나섰다. 날씨는 꽤 더웠다. 나는 3km를 뛰기로 했다. 그때 나의 체력이 바닥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힘들어하기보다 즐거워 보였고, 낯선 한강의 풍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새로운 경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참 예뻤다. 그날 아이들은 단순히 마라톤을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초대받은 존재라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들도 누군가를 초대하고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은 누군가의 초청을 받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서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들이 다시 누군가를 초청하고 돕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받은 사랑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씨앗이 될 것이고, 그 씨앗은 반드시 선한 영향력이라는 열매로 자라날 것이다.
얼마 전 비전캠프를 통해 아이들은 꿈을 노래했다. 그 자리에는 한국 친구인 하랑이와 지성이도 있었고, 이번에는 션님이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아이들을 응원해 주었다. 이 모든 만남과 격려는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힘이 되고 있다. 아마 아이들은 지금 당장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귀한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들의 인생을 어떻게 움직이게 했는지 말이다.

지금도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이레학교)의 학교 건축을 위한 캠페인은 계속되고 있다. 더 많은 고려인 아이들이 이 학교를 통해 배우고, 회복되고,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날을 믿는다. 그리고 그날을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이 일은 끝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