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취감의 흥분이 가라앉은 후에

거센 파도도 잠잠해지리니. 마치 성취감의 흥분이 가라앉듯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느헤미야 12:27)

예루살렘 성벽 공사는 느헤미야 6장에서 이미 끝이 났습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민족적 과업을 달성한 순간 백성들이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했을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곧바로 봉헌식을 치르지 않습니다. 성벽 봉헌식은 한참 뒤인 12장에 와서야 비로소 거행됩니다. 그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유다 백성들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울며 회개했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며 조상들의 광야 장막살이를 몸소 체험했고,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에 굳게 맹세하며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비를 뽑아 누가 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 살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텅 비어 있던 성벽 안을 사람으로 채워 넣은 것입니다.

봉헌이란 그저 물건이나 건물을 바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닙니다. 봉헌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리는 행위입니다. 흙과 돌로 만든 구조물을 하나님께 바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봉헌해야 할 대상은 돌로 쌓은 성벽이 아니라, 그 성벽 안에 살아갈 사람들, 그리고 그 성벽을 만들기 위해 함께 땀흘렸던 사람들입니다.

비로소 열린 봉헌식은 잔치이자 축제였습니다. 이 기쁨은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해냈는가’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백성인가’를 확인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쁨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쉽게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완공의 순간은 짜릿하지만, 그 도파민의 효과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결과물이 나오는 그 찰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묘한 허전함이 밀려오곤 합니다. 짜릿한 성취감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분명 원하던 것을 손에 쥐었는데, 막상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그 허전함 말입니다.

성취는 ‘내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주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완공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고는 율법과 언약 앞에서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치열하게 다시 점검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냈는가’보다, 그 과정을 통과하며 ‘누구로 빚어졌는가’에 더 깊은 관심을 두십니다.

거센 파도가 지나간 후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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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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