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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칸 통신⑥] 크리스티안 문주 ‘피오르드’ 황금종려상…역대 10번째 2회 수상자 등극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호프> 수상 실패했으나 존재감 과시 큰 수확

[아시아엔=칸/전찬일 영화평론가]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피오르드(Fjord)>가 황금종려상을 안으며, 우리 시간으로 5월 24일 새벽 제79회 칸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문주 감독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2007년 칸 최고 영예를 거머쥔 바 있어, 역대 10번째 2회 수상자가 됐다.

<피오르드>는 남편의 나라 루마니아에서 아내의 나라 노르웨이로 이주한 부부가 루마니아에서 하던 방식대로 다섯 자녀를 키우려 하나, 법제도와 문화의 충돌 속에서 아동학대 혐의를 받으며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그렸다. 제목 ‘피오르드’(피오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빙하기에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U자형 골짜기에, 빙하기 이후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상승해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형성된 좁고 깊은 만(협만·峽灣)을 뜻한다. 영화는 노르웨이 피오르드 인근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표면 아래 숨겨진 사회적 태도와 불안의 문제를 집요하게 짚는다. 복음주의 전통에 충실한 기독교 가정과, 아동 학대 및 아동 권리 문제에 유난히 엄격한 진보적 노르웨이 사회 간의 근본적 갈등을 파헤친다.

하지만 <피오르드>에서 걸작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통렬함과 통찰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루마니아(동유럽)와 노르웨이(북유럽) 사이의 문화 충돌 역시 다소 상투적으로 다가온다. 극 전개 또한 도식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와, <어프렌티스>(2024), <어벤져스: 둠스데이>(2026) 등에 출연한 세바스찬 스탠의 연기 역시 다소 거칠어 섬세함이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황금종려상이 <피오르드>에 돌아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다.

영화는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로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12인 평단 평균 평점에서 2.5점을 받으며 중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피오르드>의 평점은 총 22편 가운데 후카다 코지의 <나기 노트>와 함께 공동 8위였다. <피오르드>보다 높은 평점을 받은 상위 7편 가운데 5편이 7개 본상 중 5개를 차지했다.

지난 칸 통신 5탄에서 언급한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들 역시 대부분 수상에 성공했다. <파더랜드>는 하비에르 암브로시와 하비에르 칼보가 공동 연출한 스페인 영화 <블랙 볼>(2.1점)과 함께 감독상을 받았고, <미노타우르>는 심사위원대상을, <올 오브 어 서든>은 비르지니 에피라와 오카모토 타오가 공동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영화제 막판 공개된 독일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감독의 <더 드림드 어드벤처>는 3.1점을 얻으며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결국 심사위원상을 차지했다. 영화는 여성 고고학자 베스카(야나 라데바)가 불가리아 국경의 작은 도시로 발굴 작업을 떠난 뒤, 특별한 연대감을 공유하게 된 한 남자를 구해내기 위해 마을 범죄 조직에 연루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각본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 <우리의 구원>(에마뉘엘 마레) 역시 2.8점을 기록했다. 1940년 9월 프랑스 비시 정권을 배경으로, 조국을 구하고자 했던 한 남자가 체제의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수상작 가운데 <피오르드>보다 낮은 평점을 받은 유일한 작품은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발렌틴 캄파뉴와 에마뉘엘 마키앙이 출연한 루카스 톤트 감독의 <카워드>다. 평점은 2점이었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는 가운데, 전장에서 만난 병사들이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의 구원>과 함께 2.8점을 받으며 수상 기대감을 높였던 나홍진 감독의 <호프>와 제임스 그레이의 <페이퍼 타이거>는 결국 무관에 그쳤다. 그럼에도 <호프>는 존재감을 충분히 과시했다는 점에서 큰 수확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500억이든 700억이든, 혹은 1000억 원이든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흥행 성적이다. 그런 점에서 칸에서의 화제성은 흥행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오는 7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완성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후반 작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번이 무려 여섯 번째 경쟁 부문 초청이었던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가며, 미국 독립예술영화계를 대표해온 감독으로서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박찬욱 심사위원장

수상 결과만 놓고 보면 올해 칸은 모험이나 이변이 거의 없는, 지나치게 무난한 영화제였다고 총평할 수 있다. 예측 불허의 영화들로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해온 심사위원장 박찬욱의 개성이 이번 수상 결과에는 상대적으로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인상도 남긴다. 올해 칸의 9인 심사위원단은 유럽 영화에 완승을, 미국 영화에 완패를 안긴 셈이다. 마켓 주빈국 자격으로 25년 만에 세 편의 경쟁작을 진출시킨 일본 영화까지 포함해도, 아시아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정도가 체면을 유지한 수준이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변화는 일종의 세대교체 흐름이다. 스페인 영화 <블랙 볼>의 두 감독은 각각 1984년생과 1991년생이다. 반면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1949년생으로, 현존 세계 영화계 최고 거장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노거장은 빈손으로 돌아갔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일본 영화계 역시 비슷하다. 선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닌 후배 하마구치 류스케가 상을 받았다.

수상작 및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 황금종려상 = 피오르드(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루마니아)
▲ 심사위원대상 = ‘미노타우로스'(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루마니아)
▲ 감독상 = 하비에르 암브로시·하비에르 칼보(‘라 볼라 네그라’, 스페인),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파더랜드’, 폴란드)
▲ 심사위원상 = 발레스카 그리스바흐(‘더 드림드 어드벤처’, 독일)
▲ 각본상 = 에마뉘엘 마레(‘노트르 살뤼’, 프랑스)
▲ 남우주연상 = 에마뉘엘 마키아·발렌틴 캉파뉴(‘카워드’, 벨기에)
▲ 여우주연상 = 비르지니 에피라, 오카모토 다오(‘올 오브 어 서든’, 일본)
▲ 단편 황금종려상 = 파라 로스 콘트린칸테스(페데리코 루이스 감독, 아르헨티나)
▲ 황금카메라상 = 벤이마나(마리-클레망틴 뒤사베잠보 감독, 르완다)
▲ 명예 황금종려상 = 가수 겸 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이래저래 2026년 칸 역시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영화제로 기억될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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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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