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2일 개미고개에 갔다. 미 제21보병연대(21st Infantry Regiment) 기념탑에는 “‘The splendor of peace and freedom’”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1950년 7월 천안전투 패배 이후, 리처드 W. 스티븐스(Richard W. Stephens) 대령의 병력은 이 낮은 능선에서 북한군을 수일 동안 지연시키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내 눈길을 끈 것은 거대한 기념탑보다 길가의 작은 조형물이었다. 바위에 꽂힌 총검. 그 위에 얹힌 철모. 흙 위에 남겨진 발자국. 그리고 벗겨진 군화 한 켤레. 전사자를 상징하는 오래된 군대의 표식이었다.


기념탑 벽면에는 전사한 미군 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명단에는 없는 기록도 있다. 그 언덕에서 병사들과 함께 포탄을 맞으며 전투를 지켜본 종군기자들의 이름이다.
칼 마이던스(Carl Mydans)는 이곳에서 포격 장면을 촬영한 뒤 필름 송고를 위해 먼저 떠났고, 호머 비가트(Homer Bigart)는 살아남아 <From a Foxhole in Korea>라는 기록을 남겼다.
마이던스의 사진은 교과서와 전쟁사에 남았고, 비가트의 글은 저널리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레이 리처즈(Ray Richards)와 어니 필러(Ernie Peeler)는 돌아오지 못했다. 리처즈와 필러는 대개 한두 줄의 전사 기록으로만 언급된다. “전선 취재 중 사망.” 그 짧은 문장 뒤에는 아마 마지막까지 수첩을 품고 있었을 사람들의 시간이 숨어 있다.
기록자는 전쟁을 남기기 위해 최전선으로 들어가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기록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진과 기사 사이 어딘가에, 이름만 희미하게 남은 두 기자가 있다.
그들의 이름은 기념비 벽면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도 저 군화 곁 어딘가에 함께 서 있을 것이다.
전쟁은 병사들만 죽이지 않는다. 그 전쟁을 기록하려 했던 사람들도 함께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는 사진과 기사로 기억되고, 누군가는 기록 속 몇 줄로만 남는다.
개미고개의 낮은 능선 위에서, 나는 이름 없는 군화 한 켤레가 어쩌면 돌아오지 못한 종군기자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