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이우근 칼럼] “죄 지었으면 대통령도 감옥 가야”…이 말, 왜 공소취소 특검법 논란의 중심에 섰나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연합뉴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 영국의 법관이자 정치인인 에드워드 코우크(Edward Coke)가 밝힌 근대 법치주의의 핵심 원리다. 단순한 도덕적 명제가 아니다. ‘권력의 분립, 공정한 절차, 이해충돌 방지’라는 헌정질서의 근본 원칙이다.

우리 법률체계에서도 특정 사건에 이해관계가 있는 법관은 그 사건의 재판을 맡지 못한다. 소송법은 제척除斥)·기피(忌避)·회피(回避)제도로 이 원칙을 뚜렷이 밝혀놓았다(형사소송법 제18조 이하, 민사소송법 제41조 이하). 하물며 피고인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법관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선거로 뽑지 않는다. 엄격한 법적 요건에 따라 임명된다. 선거는 다수인의 선택으로 결정되지만, 사법정의는 다수 대중의 뜻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군중 다수가 박수친다고 해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군중은 진실이 아니라 환상을 원한다.” <군중심리학>을 쓴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의 통찰이다.

사법부는 다수가 특정인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를 특별하게 보호하는 재판을 할 수 없다. 국민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만이 아니다. 입법부인 국회도 특정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나 특정 사건을 덮어버리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법률은 일반성.추상성을 지녀야 한다.​

이른바 ‘조작기소 특검법’의 수사 대상 12건 중 8건이 대통령 관련 사건이다. 대통령 관련 특정 사건의 공소제기를 특별검사가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법률은 입법권의 한계를 벗어난다. 입법부가 특정 개별 사건의 사법절차를 통상적 사법절차 외부에서 종료시키는 것은 사법권 침해행위이고, 권력분립원칙에 어긋난다. 그 특별검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도 이해충돌방지 원칙을 거스른다. 위헌법률심사의 대상이다.

대통령의 사면권도 사법적 판단의 내용을 사법부 밖에서 일부 변경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법부의 판결이 확정된 뒤에 그 형벌의 집행만을 감면하는 것이다. 확정판결 이전에 재판 자체를 없애는 공소취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공소취소도 1심판결 이전에만 가능하다(형사소송법 제255조).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는 공소취소가 불가능하다. 사법권의 독립을 위해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입법부가 법원의 재판 없이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게 유죄와 처벌을 선언하는 사권박탈법(私權剝奪法, Bill of Attainder)을 무효라고 판결했고(Cummings v. Missouri, United States v. Lovett), 연방헌법 제1조 제9항 및 제10항도 그러한 법률을 금지하고 있다. 사법절차 없이 특정인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법절차 없이 특정인에게 ‘무죄’를 선언하는 것도 위헌일 터이다.

‘조작기소 특검법’이 다수당인 여당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하면 여당 소속 대통령에게 공포권이 넘어간다. 자기 관련 사건을 없앨 수 있는 법률을 자기가 공포하는 셈이다. 마치 피고인이 자기 관련 사건의 최종재판관이 되는 모양새다. 특검법 반대여론이 들끓고 지방선거를 의식한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판의견이 쏟아지자, 청와대는 그 법안 내용의 당부(當否)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다만 “국민적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달라”고 요청했다. 선거만 끝나면 유권자의 비판도 두렵지 않다는 뜻이 아니기를 바란다.​

“법이 타락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법 때문에 국민이 타락하는 경우다. 두 번째 타락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치료약인 법 자체에 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을 주창한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 쓴 말이다. 그렇지만 치료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독을 품은 법률을 없애버리는 것이 치료약이다.

포퓰리즘과 이데올로기의 결탁, 정치꾼들의 뒤틀린 권력추구, 비뚤어진 재판관들의 선택적 정의…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유, 민주, 공화의 적(敵)들이다.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라’는 헌법규정을 거슬러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면 민주주의는 종말을 맞는다.​

‘법률은 인간을 지배하고, 이성은 법률을 지배한다.'(Law rules man, reason rules law.) 영국의 성직자 토마스 풀러(Thomas Fuller)의 신념이다. 법률은 여론이 아니라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이 시대의 사법이 과연 이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가?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파가 입법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행정권 독점과 사법권 탈취로 이어지는 것이 반(反)이성적 대중독재다. 한 정파가 입법부를 지배하고 사법부가 그 입법부의 뜻에 무릎 꿇으면, 결국 그 정파가 사법부의 재판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삼권분립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헌법파괴 행위다.​

특검법 발의를 주도한 여당 의원이 “시민 10명 중 8~9명은 공소취소의 뜻을 잘 모른다. 공소취소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자세히 아는 국민은 없다. 법률적으로 가면 피곤한 문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법률적으로 가면 피곤하다니, 앞뒤가 맞는 말인가? 법률적으로 가면 누가 피곤하다는 것인가? 국민인가, 특검법을 발의한 의원들인가? 예전에 누군가 말했다. “죄를 지었으면 대통령도 감옥에 가야 한다”고. 누가 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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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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