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하고 있을 때, 어느 정치인이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고 호통쳤다. 그는 다음 대통령이 되었다. 혁명은 정치체제의 변혁을 꿈꾼다. 그러나 입헌민주국가에서 정치체제의 변화는 혁명이 아니라 국민의 선거로만 가능하다.
선거로 집권한 권력이라도 무소불위의 특권을 가질 수 없다. 선거결과로 나타난 민의(民意)도 절대선(絶對善)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정의 증인들을 다시 청문회장에 불러 세운 국회에는 품위도, 인권도 없어 보인다. 나라의 발전을 위한 원대한 정책구상은 없고 갈택이어(竭澤而漁)의 잔꾀만 넘쳐난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낸 뒤에 물고기를 다 잡아먹으면, 더 잡을 물고기가 없어 굶을 수밖에 없다. 만약 법정에서 재판장이 국회 청문회처럼 막말‧모욕‧호통으로 피고인이나 증인을 꾸짖었다가는 그날로 당장 사표를 써야 할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없는 죄를 만들어 국가원수의 국정 수행을 옥죄는 비정상이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조작 기소를 지금 당장 취소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촉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들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자, 법무부는 즉각 그 담당 검사들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국회의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지난 정부의 검찰총장은 “지금처럼 입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한 적이 없다… 수년간 수십, 수백 회에 걸쳐 법원의 증거 조사와 판단이 이루어진 사실관계와 법리를 단 며칠 만에 송두리째 뒤집고 있다”면서 “세상을 등지고 싶은 심정”이라고 탄식했다. 법원에서 인정된 증거는 배제되고,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의 일방적 주장과 일부 반대 증거를 내세워 일부 의원들이 단정적으로 ‘조작 기소이자 무죄’라고 사실상의 결론을 내리는 정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정치 현안을 정치권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모조리 사법부에 떠넘기는 ‘정치의 사법화’, 법의 문제를 법원이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쁜 ‘사법의 정치화’가 사법의 독립에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정치적 사안은 고소·고발로 사법의 영역에 떠넘기고, 사법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은 거꾸로 정치권에서 멋대로 주무른다. 여론이나 정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할 사법부가 법리적 정당성이 아니라 대중이나 정치권의 압력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하다.
사법이 정치권의 위협에 무릎 꿇어 정무적 판단에 치우치게 되면 법치주의와 사법독립은 무너진다. 유무죄를 가리는 국가기관은 국회가 아니라 법원이다. 확정된 사건은 사법부의 재심으로만 다시 검토될 수 있다. 법원이 심리 중이거나 이미 확정된 사건을 국회가 다시 꺼내 뒤집는 것은 올바른 청산이 아니다.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다. 보복이 아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국회의) 감사 또는 조사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한다. 입법부가 행정권과 결합하면 법을 제 마음대로 만들어 실행하는 독재로 나아가고, 입법부가 사법권까지 거머쥐게 되면 법을 제멋대로 해석․적용하는 폭정이 등장한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입법․사법․행정의 ‘분립과 균형’ 속에서만 가능하다. “권력자는 권력을 남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권력은 권력으로 견제되어야 한다… 한 사람 또는 한 기관이 입법․사법․행정의 세 권력을 모두 가지면 자유는 사라진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 쓴 글이다.
국가의 권력을 단순히 나누는 것만으로는 중우정치(衆愚政治)와 포퓰리즘에 휘둘리기 쉬운 대중의 오판(誤判)을 막지 못한다. 나눠진 삼권이 끊임없이 서로 견제하고 서로 담합(談合)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진정한 삼권분립이다. 그것이 독립된 사법의 제자리를 지키는 길이다.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에, 정부는 먼저 통치자를 통제하고 다음으로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 미국 제4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매디슨의 신념이다.
‘통치자를 통제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정부…’ 어느 꿈나라 이야기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