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Horse에서 레클리스 카페까지…전쟁을 짊어진 동물들

연천의 카페로 살아난 ‘레클리스’와 영화 War Horse 속 ‘조이’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에는 ‘레클리스 카페’가 있다. 군사분계선과 멀지 않은 접경 지역, 오늘의 평온한 들판과 도로 사이에 자리한 카페 이름이 뜻밖에도 한 마리 말의 이름이라니, 처음 들으면 조금 의아하다. 그러나 그 이름의 사연을 알고 나면, 커피잔 하나 앞에 두고도 전쟁과 기억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된다.
레클리스(Reckless)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해병대의 군마(軍馬)였다. 탄약을 나르고, 부상병을 옮기고, 포성이 쏟아지는 능선을 오르내리며 병사들과 생사를 함께했다. 인간의 언어를 알지 못했으나, 누구보다 전쟁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낸 존재였다. 전우들은 그녀를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동료로 기억했다.
나는 오래전 연극과 영화로 War Horse를 본 적이 있다. 영국 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속으로 끌려간 말 ‘조이(Joey)’의 이야기다. 특히 무대판 War Horse는 정교한 인형극 형식으로 유명했다. 나무와 천,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는 말이었지만, 관객은 어느새 그것을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귀를 세우고, 숨을 쉬고, 두려움에 떨며 다시 달려 나가는 말의 몸짓 속에서 전쟁의 잔혹함이 더욱 선명해졌다.
인간 배우들이 말하는 전쟁보다, 말 한 마리가 보여주는 침묵의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War Horse의 조이는 허구의 존재다. 그러나 그 허구는 진실을 담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만의 비극으로 기록되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아닌 생명들도 함께 끌려 들어간다. 말, 개, 비둘기, 노새, 낙타…. 전쟁의 역사에는 이름 없이 동원된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 그들은 국가도 이념도 알지 못한다. 국경선도, 휴전선도, 승리와 패배도 모른다. 다만 인간이 만든 폭력의 현장에서 짐을 지고, 길을 찾고, 쓰러지는 몸을 견딜 뿐이다.
그 점에서 레클리스는 특별하다. 그녀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였다. 제주의 작은 말이 한국전쟁의 격전지에서 미 해병대와 함께 움직였고, 병사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휴전 뒤에도 그녀를 한국에 남겨 다시 짐마차를 끄는 말로 둘 수 없다고 여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존재를 다시 ‘물건’처럼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영웅처럼 환영받았다.
전쟁은 인간을 비인간화한다. 숫자로 세고, 병력으로 계산하고, 손실로 기록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 마리 말은 인간들에게 다시 인간다움을 가르치기도 한다. 전우애, 감사, 책임, 연민 같은 감정은 가장 참혹한 전쟁터에서 오히려 또렷하게 드러난다. 레클리스가 단지 군마가 아니라 ‘하사(Sergeant Reckless)’로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천의 레클리스 카페는 그래서 흥미로운 장소다. 한때 포연과 긴장이 감돌았던 접경 지역에서, 이제 사람들은 그 이름 아래 모여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전쟁의 기억이 일상의 공간으로 옮겨온 셈이다. 포탄 대신 커피 향이 퍼지고, 참호 대신 테이블이 놓였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대화가 들어선 것이다.
기억은 박물관이나 기념비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작은 카페 간판 하나가 더 오래 기억을 붙든다. 거창한 영웅담보다 한 마리 말의 이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동물은 말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인간의 탐욕과 전쟁, 충성과 희생, 그리고 늦게 찾아오는 감사까지.
런던의 관객들은 허구의 말 조이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은 실제의 말 레클리스를 위해 경례했다. 하나는 예술이 만든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가 남긴 기억이다. 그러나 두 기억은 한곳에서 만난다. 인간이 전쟁을 만들 때, 그 짐은 종종 동물들도 함께 짊어진다는 사실이다.
연천의 한 카페 이름 앞에서, 우리는 그 오래된 진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