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칼럼

4·27 한국전쟁 순직 종군기자 추념의 날…총성 너머 기록된 ‘기억의 지도’

경기도 파주시 통일공원 소재 종군기자 추념비. 종군기자추념의 날은 대한민국의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공식 국가기념일은 아니다. 한국전쟁 중 순직한 종군기자들을 기리는 추념식을 뜻하며, 매년 4월 27일 전후에 경기도 파주 통일공원 내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앞에서 열려 왔다. 추념비 자체가 1977년 4월 27일 준공되어 그 날짜를 기준으로 행사가 이어져 온 것이다. <사진 이상기>

잿빛 서울의 첫 하루

1950년 6월의 서울은 뜨거웠다. 폭격과 불길, 사람들의 울음이 뒤섞인 거리 위로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침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기자들이 급히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끝까지 서울에 남았다. 그 가운데 한 한국인 기자는 6월 29일, 함락된 도시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총성이 멎은 뒤 그의 노트만이 남았다.

그 기록은 기사가 아니라, 전쟁이 도시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적 증언에 가까웠다.

전선이 무너지는 남쪽 행…필더의 하루

대전으로 향하던 도로 위에는 후퇴하는 군인들의 흙먼지가 자욱했다. 미 제24사단이 지연전을 펼치던 그 공간에서 William N. Fielder는 카메라를 들고 전선을 따라 걸었다. 연기와 피, 땀과 먼지가 뒤섞인 전장 속에서도 그는 렌즈를 내리지 않았다.

1950년 7월 22일, 그는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가 기록하려 했던 ‘길’도 그 자리에서 멈췄다.

진동리의 바람 속…무어의 기록

7월 말 남부 전선은 정적과 공포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AP통신의 William R. Moore는 진동리 언덕을 따라 이동하며 병사들의 철수와 전황을 기록했다.

1950년 7월 31일, 북한군 전차가 접근하는 순간 그의 취재 차량은 공격을 받았다. 그는 현장에서 숨졌고, 몇 개의 필름만이 남았다. 전쟁은 그의 삶과 기록을 동시에 끊어놓았다.

폭음 아래서…영천의 지뢰

1950년 8월 12일 정오, 영천 전선. 지프차로 이동하던 기자들이 지뢰를 밟았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크리스토퍼 버클리(Christopher Buckley), 그리고 <타임스>의 이안 모리슨(Ian Morrison)으 그 자리에서 생을 마쳤다.

그들이 남긴 원고는 일부만 본국에 도착했고, 이야기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기록과 죽음 사이의 언덕

이들의 마지막 동선은 단순한 전술 지도가 아니라, 기억을 남기려는 인간의 궤적이다. 서울, 대전, 진동리, 영천. 서로 다른 공간에서 쓰러졌지만, 그들이 향한 방향은 같았다.

전쟁을 인간의 기억으로 남기려는 길이었다.

전쟁이 기억을 요구할 때

종군기자는 군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전선을 향해 걸었다. 그것이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총탄과 지뢰가 가로막는 험로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들이 걸어간 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 길은 바로, 한국전쟁 종군기자들이 남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다.

종군기자추념식에서 역대 한국기자협회장들이 묵념으로 순직 기자들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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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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