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란 사태를 둘러싼 국제 보도는 충돌과 사망자 수, 외교적 긴장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사태를 살아내고 있는 이란인 개인들의 목소리, 특히 해외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란인 디아스포라의 증언이다. 그들의 경험은 현재 이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정권 내부의 균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아시아엔>은 지난 1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주한 이란인들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이란 출신 박씨마 목사를 인터뷰했다. 박 목사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붕괴되면서 한국으로 와 살고 있다. 아시아엔은 이란 사태를 단순한 정권 대 시위대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종교·인권·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정치인이 아닌, 여성·종교인·이란 출신 이주자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지닌 박씨마 목사의 증언을 통해 이란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특히 최근 해외 이란인 사회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는 팔레비 왕자 문제는 단순한 왕정 복귀 논쟁이 아니라 ‘이슬람공화국 이후의 이란’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인터뷰는 그 논의가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 가운데 하나다. <편집자>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란인이고, 기독교 목사입니다. 이란을 떠나 한국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제 마음과 생각은 이란 국민들과 함께 있습니다.”
-최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 미국이 망명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쪽에서 재산과 생명을 보장할 테니 권력을 내려놓고 해외로 나가라는 제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일은 한 사람의 거취 문제로 끝날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체제 전체의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현재 이란 정권을 실제로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혁명수비대나 정보기관 같은 비밀 조직이 약 1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아직은 정권의 명령을 따르고 있습니다.”
-일반 군인이나 경찰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많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을 향해 총을 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총을 내려놓거나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하지 않는 군인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 동포를 어떻게 쏘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양심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명령을 거부하거나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영화감독이 아시아엔에 보내온 글에 따르면 외국 병력이 시위 진압에 투입됐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레바논이나 주변 국가에서 병력을 데려와 시위 진압에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이란 정부가 자국 군과 경찰만으로는 통제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란 내 시위 상황은 어떻다고 듣고 계십니까?
“이미 2주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정한 상징적 날짜를 전후해 대규모 집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최근 시위가 집중됐던 날(1월 8~9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1월 초에는 팔레비 왕조와 관련된 역사적 날짜가 있었습니다. 팔레비 국왕이 이란을 떠난 날과 맞물려 상징성이 컸습니다.”

-최근 팔레비 왕자에 대한 언급이 다시 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입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거주 이란인들 사이에서도 레자 팔레비 왕자가 하나의 상징처럼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란인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팔레비 왕자의 이름이 구호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 이란에는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인물이 거의 없습니다. 종교 지도자도, 정치 지도자도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정권과 거리를 둔 인물이자, 이란이라는 국가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왕정 복귀를 원하는 흐름으로 봐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는 왕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체제 전환, 민주적 절차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그가 맡게 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직접 통치자가 아니라 임시 정부로 가는 과도기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자유 선거와 새 헌법으로 가는 길을 여는 역할입니다.”
-임시 정부 논의도 실제로 진행 중입니까?
“해외 이란인 사회에서는 이미 임시 정부, 과도 헌법, 선거 일정 같은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팔레비 왕자는 국제사회와 이란 국민을 연결하는 가교로 거론됩니다.”
-이란 내부에서도 이런 논의가 공유되고 있습니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을 뿐, 침묵 속의 지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와 중산층은 그의 메시지를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유럽 등 해외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런던, 베를린,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이란인 집회에서는 팔레비 왕자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언급됩니다. ‘왕정 복귀’라기보다는 ‘이슬람 공화국 이후의 질서’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팔레비 왕자에 대한 비판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과거 왕정 시절의 기억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팔레비 왕자 본인도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이란 사회의 상처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팔레비 왕자가 이란으로 귀국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상징이 될 것입니다. 정권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고, 군과 경찰, 관료 조직 내부의 이탈도 더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은 그 가능성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팔레비 왕자 논의가 갖는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요?
“팔레비 왕자에 대한 논의는 한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이란 국민들이 ‘이슬람공화국 이후’를 진지하게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이 싸움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이란 국민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박씨마 목사는 22일 본지와 통화에서 인터뷰 당시 언급했던 이란의 종교자유와 관련한 문답을 꼭 넣어달라고 했다.
-이란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습니까?
“헌법에는 분명히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돼 있습니다. 이슬람 외에도 모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글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이란의 종교 자유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실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지금 이란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감옥에 갇혀 있고, 조로아스터교 신자나 바하이교 신자들도 체포와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차별이 아니라 구금과 고문,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1979년 사랑하는 조국 이란을 떠나온 지 만 46년, 그동안 단 두차례밖에 고국을 찾지 못한 박씨마 목사가 올해는 다시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