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5년 자민당은 정치 안정을 목적으로 ‘보수합동’을 통해 8개 집단으로 결성되었다. 당시 합동의 추진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정치 안정을 위하여 파벌의 합동이 필요하였다”고 할 정도로 정치가 불안정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의 보·혁 대립의 정치와 ‘55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자민당은 ‘만년 여당’으로 장기 지배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최근 자민당은 중·참의원 선거에서 2연패를 거듭하며 소수정당이 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다당제 체제로 전환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물가고와 정치자금 문제로 ‘자민당 NO’라고 외치는 여론 심판의 결과다.
자민당은 결당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지만, 최근에는 당의 내실과 지지기반, 당 조직이 무너지면서 ‘흰개미 정당’이 되었다. 그 원인은 파벌 기능이 약화되고, 정치자금에 의한 보수 부동층이 당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저출생·고령화 현상과 디지털화로 지지자의 가치관이 다양화함으로써 지지기반이 약화되었다.
그동안 자민당의 모습은 2대 정당으로부터 다당화하였다. 그리고 포괄정당으로부터 연립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야당으로 전락해 우경화의 길을 걷기도 하고, 최근에는 소수정당으로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자민당 우경화 이후 당을 이끈 아베(安倍晋三)와 이시바(石破茂) 전 총리는 자민당의 미래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예측을 하면서 당의 수명을 언급하였다. 아베는 기시(岸)를 회고하면서 당시 자민당 총재가 된 후 “자민당은 계속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반면 이시바는 앞으로 “자민당은 10년 정도는 여당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종말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두 정치인의 자민당의 미래에 대한 진단은 황혼에 접어든 당을 회복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현재 자민당은 ‘포괄형 보수정당’이라는 당의 시스템과 체질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나타난 일본 정치의 지각변동을 보면 취약한 정치권력을 강화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일본의 정당정치는 변혁기에 접어들었고, 자민당은 역사적인 전환기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소수정당으로 종언을 맞이할 것이다.
과거 자민당은 결당 이후 70년 동안 한국과의 관계를 주도했다. 소위 친한파 정치인들은 양국 사이의 대화와 갈등을 주도하면서 여러 가지 난제에 직면하였다. 그들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성사시키고, 그 이후 한일포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일부 우파 정치인들은 교과서, 과거사 등의 반복되는 망언으로 한일협력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 친한파 정치세력들의 약화로 일본은 한국 관련 이슈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자민당에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현재 기존 자민당이 이끌던 중도보수는 후퇴하고, 일본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세력들이 여·야당에 현저하게 등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기존의 조직정당은 약화하고 다당화가 진행되며, 우파 포퓰리즘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유리한 선거전이 될 것이다. 일본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자민당은 소수정당으로 ‘자민·유신+α’ 정치를 극복할 것인가. 존망의 기로에 직면한 자민당이 2026년 3월 예정된 당대회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재생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