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글프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빨리 무너지고 빨리 일어서는 길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대문호 괴테, 대철학자 칸트, 대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독일이 히틀러에게 장악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년 6개월이었다.
‘K’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자랑을 늘어놓는 우리나라는 대미 무역 협상을 대미 안보 협상으로 격상시켜 불확실성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교만하다.
어제는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제법 의식이 있다는 사람조차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수갑을 찬 채 포토라인에 선 모습이었다.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최루탄의 시대’가 있었다. 옷에 매캐한 냄새가 밴 채 뒷골목으로 달아나던 대학생이나 그들을 쫓던 전경 모두 같은 또래였지만, 제복 하나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을 보며 “인간이 이렇게 나약할 수 있구나”를 절감했다.
수갑은 본래 고대 로마에서 노예나 전쟁 포로의 탈주를 막기 위해 발목의 쇠고랑과 함께 만들어진 도구다. 인간을 최하층으로 전락시키고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하던 야만의 상징이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는 범죄인을 구속하는 첫 수단이 되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굴욕과 낙인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든 ‘K-’를 앞세워 자랑한다. 심지어 K-민주주의를 말하며 UN 연설에서까지 치켜세운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다르다. ‘연성 독재(soft despotism)’를 우려하는 시대가 되었고,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는 일상이 ‘K-수갑’으로 굳어지고 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한때 최루탄을 동남아로 수출하던 나라가 이제는 남미에서 싸구려 입법을 들여오고 있다. 모두 권력 서열 1위 선출직 공무원이 주도한 일이다. 한 사람을 위해 형법의 ‘배임죄’를 삭제하고, 한 사람을 위해 검찰청을 없애며, 한 사람을 위해 대법원 제도를 고치려 한다. 특정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조직을 통째로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범죄 연루자가 최고 권력에 선출된 나라가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숙명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혁신은 오지 않았다.
서글프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빨리 무너지고 빨리 일어서는 길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제2, 제3의 이진숙이 계속 나오더라도, 그것이 자기 집 문 앞에서 일어나더라도 4050 세대는 변하지 않고, 특정 지역도 변할 의지가 없다.
정치는 상생의 장이 아니라 모순의 전쟁터로 변했다. 모순은 제거되고 청산되어야 한다. 이진숙 전 위원장이 수갑을 차며 “이건 전쟁이야”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리지 못한 이들이 우리의 팔꿈치를 치고 근간을 흔든다. 위험한 외줄타기는 계속된다. 나는 국가 발전 경로상 엉뚱한 길을 걷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왜곡된 역사 감정을 비틀어 나라를 망치려는 무리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어렵게 이룩한 이 아름다운 조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