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사 20:2-3)
고대 근동에서 ‘벗은 몸과 벗은 발’은 전쟁에서 패배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끌려가는 포로나 노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극심한 수치와 굴욕, 무력함을 의미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삼 년 동안이나 벗은 몸과 맨발로 다녔습니다. 애굽과 구스가 앞으로 치욕스럽게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면 언어적 메시지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비언어적 메시지도 함께 전했습니다. 특정한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 행동으로 한 번 전하는 메시지가 말로 백 번 전하는 메시지보다 훨씬 실감이 나고,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설교나, 기독교 변증, 성경에 대한 해설이 오늘날처럼 넘쳐나는 시대는 과거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보고 듣고 읽어도 남을 만큼의 영상물이나 서적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복음에 대해서 백 번도 넘게 말하는데 세상이 듣지 않는 것은, 제대로 보여주는 한 번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설명이나 변증거리이기 전에 예표입니다. 들려주기 전에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별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거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그저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를 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십자가를 설명하는 일이기 전에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전하는 일이 말로 해서 될 일이었으면, 글로 써서 될 일이었으면 이미 다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해, 다음 세대를 향해, 가족들을 향해 설명과 설득만 하다가 그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은 말과 글에 서툰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여 주고 살아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설명 가득한 쪽지를 뿌려 대는 것이기보다 변명 없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살아가는 삶의 한 절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