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이정현 정치칼럼] 정치는 때론 반전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통령님을 모시고 영국을 국빈 방문한 적이 있다. 런던시장 초청 만찬 참석 차 행사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다가 대통령께서 미끄러지셨다. 시장 부부와 카메라 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홍보수석이었던 나는 대통령님의 안위와 다음 날 언론 보도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 난감한 상황을 반전시킬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당시 상황이라도 정확히 알아보자 싶어 가장 잘 아는 통역사 룸에 전화를 걸었다.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놀라 달려온 노(老) 시장 부부에게 일어나시면서 Dramatic entry(극적인 입장)라고 하셨고, 세 시간 만찬을 마치고 나오시면서는 런던시장 부부에게 Quiet exit(조용하게 퇴장)이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됐다 싶었다. 밤새 고민한 끝에 문장을 정리해 다음 날 기자들 앞에 섰다.

“어제 런던시장 초청 만찬장에 입장하시는 과정에 대통령께 돌발사고가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순간 초집중해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대통령님께서 넘어지셨습니다. 다행히 전혀 다친 데는 없으십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렇게 유머를 하시며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셨다는 얘기를 전하고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끝”이라고 밝은 표정을 지으며 브리핑을 마쳤다. 기자들이 붙잡고 추가 취재를 하려 야단이었지만, 더 이상 해드릴 말씀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모든 기사가 유머 기사로 도배됐다. 정치를 하려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상황을 반전시켜 보시길.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대통령님이 당 대표 시절 유세 중 커터 공격을 받아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3일째 되는 날, 비서실장이 병실로 첫 보고를 갔다. 지방선거 중이라 여론조사 내용이었다. 나는 수석 부대변인이었고, 모든 상황 진전에 대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해왔었다.

첫 보고에 대한 대표님의 반응을 듣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보고를 마치고 나온 비서실장에게 뭐라고 하셨느냐고 물으니, 아직 불편하셔서 특별히 말씀은 없으셨다고 했다. 조바심이 나서 표정이나 반응이라도 좀 말해달라고 했다. 뭐냐고 물으셔서 여론조사라고 했더니, “대전은요?”라고 물으셔서 “대전은 내일 나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거다 싶었다. 비서실장에게 방금 말한 그대로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해달라고 하고, 기자실로 달려가 “큽니다” 하고 다소 호들갑을 떨며 분위기를 띄웠다. 모든 언론이 톱기사로 “대표 첫마디 ‘대전은요'”라는 제목을 뽑았다. 당연히 지방선거는 압승이었다.

나는 왜 대전을 물으셨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대변인은 모시는 분의 관심과 생각을 정확히 읽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지도자의 한마디도 허투루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반전의 묘미 때문에 정치를 예술이라고도 하나 보다. 정치는 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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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3선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정무·홍보수석 역임, 전 새누리당 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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