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대확행은 신기루, 소확행은? 그럼 본확행!

성경은 ‘본확행’을 말합니다. 본질적이고도 확실한 행복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신명기 33장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 33:29)
거창한 성공보다는 일상 속에서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커피 한 잔, 반려동물과의 시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듣는 음악. 이 작은 행복들은 분명 소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확행이라는 사회적 현상 앞에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본질적인 행복일까요?
사람들은 대확행(大確幸)이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확행은 늪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대확행이 신기루였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소확행을 대안으로 삼았지만, 곧 그것조차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소확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빈도인데, 빈도가 줄어들면 이내 우울과 불안, 공허가 밀려오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휘발성이 강한 소확행은 의존성을 만들어 냅니다. 안정제나 진통제처럼 말입니다.
옛날 시대에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인간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독 사람들이 소확행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확행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 대중 산업이 만들어낸 소비 구조와 큰 유사성을 지닙니다. 어쩌면 현대의 대중산업이 소비자들의 심리를 겨냥하여 생산한 기가 막힌 트렌드 상품이 아닐까요? 소비하기 쉬운 확실한 행복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확행의 가장 큰 특징은 고난 없이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나는 노력, 인내, 희생 등 힘든 과정을 감내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문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문 앞에 행복이 배달됩니다. 그렇게 대중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몇몇 소수의 대확행 신기루를 현실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본확행’을 말합니다. 본질적이고도 확실한 행복입니다. 피조물에게 있어 창조주와의 관계 회복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요? 하나님과의 내적 친밀감이야말로 행복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창조주와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늪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구원이야말로 본질적이고 확실한 행복입니다. 고난을 잊게 하는 행복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행복이 있기에 고난을 향해 뛰어들어도 괜찮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pwpfLNRcceU?si=IJst_WSrmyqgKe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