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 소르망 자선강의, 그리고 나
세계경제연구원(IGE)에서 프랑스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파리정치학교 교수)의 조찬 특강이 3일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이번에는 무슨 얘기를 할까”하는 마음에서 새벽에 일어나 강연장소인 웨스틴조선호텔로 찾아 갔다. 사실 필자는 여러 해 전부터 기소르망의 조찬 강연에 참석해 그의 폭넓은 견해를 경청해 왔다.
국내 언론 일각에서는 “소르망이 너무 자주 한국에 와서 기사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필자는 여전히 그의 강연이 한국 언론에는 뉴스가치가 있고, 한국인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기 소르망이 쓴 “Good Money Changes the World”라는 책은 국어로 번역돼 있다. 그는 20여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자유롭게 앞쪽에 있는 테이블을 선택한 다음 소르망의 강연을 기다리면서 테이블에 자리를 함께 한 한국사회의 지도급 인사들과 가벼운 얘기를 나누었다. 임덕규 Diplomacy(영문 월간지) 발생인 등이 앉았던 필자의 테이블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성의 강세’를 주제로 얘기가 오갔다. 마침 필자의 테이블에서는 김정옥 우리은행 상무 등 여성들이 몇 명 있었다.
IGE의 사공일 이사장은 “관례에 따라” 영어로 사회를 진행했다. 소르망의 강연 주제는 ‘자선과 복지(Philanthropy and Welfare)’였다. 소르망 교수는 약간의 프랑스식 액센트를 섞어가면서 강연했다. 질의응답 시간을 주기 위해서인지 그의 강연 시간은 30분도 안되는 듯했다.
강연 요지를 정리해 보면,
1) 현대 복지국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서 ‘사회적 사막(social desert)’가 생기고 있어서 자선이 필요하다.
2) 한국은 OECD 회원국인데도 기부가 바닥권에 머물러 있다.
3) 사람들은 기부할 욕구를 갖고 있으나, 기부금이 사용되는 과정이 불투명해 기부에 소극적일 수 있다. 기부를 쉽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부금을 관리하는 체계가 투명해져야 한다.
4) 한국의 기업들은 PR목적상 기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인이 감옥 가지 않으려고 하는 꼼수에서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
5) 사회의 여러 영역들이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새로운 연대(new solidarity)’를 구축해야 한다. 세금공제를 하는 등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6) (한국에서도) 미국의 기업들처럼 회사원들에게는 일정 시간 자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7) 기업 또는 개인 차원의 자선을 하도록 하부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등등.
기 소르망과의 질의응답 : K-Pop이 유럽에 알려져 있지 않다고??
간략한 강연에 이어 질의응답 시간이 왔다. 여러 해 동안 IGE 조찬강연에 참여해 온 필자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내용은 “소르망 교수가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의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한 자문역을 했는데 성과가 있었는가, 한국 사정을 잘 아는 당신은 어디에서 정보를 얻느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비교해 달라”였다.
소르망은 국가 브랜드 향상 문제에 대해서만 답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명예직으로 한국의 국가이미지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한 바 있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한국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프랑스에서 한국의 소설이나 영화는 알려져 있으나, K-Pop 또는 강남 스타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은 여전히 미지의 문명(unknown civilization)에 속한다.” 등등.
모든 한국인이 한류가 유럽을 휩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르망의 이런 발언은 좀 이상했다. 그의 발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취재수첩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다. K-Pop not popular. K movies and novels popular etc..
한국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 관한 질문을 받고, 소르망은 한국에는 이웃에 대한 ‘호의(hospitality)’의 문화가 있다면서 이것을 바탕으로 자선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자선을 위한 기초가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의 문화는 돈을 추구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자선을 위하 자원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르망은 한국인은 굳이 서양의 자선문화를 모방하지 말고 이런 전통적 문화를 강화하면 된다고 역설했다.
?그럼, 기업들도 영리를 추구하지 않은 채 자선이나 기부를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소르망 교수는 “요즘 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기업의 원래 목적은 원래 일자리를 창출하고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자선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기업은 탁월한 경영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고용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 할 수 있다.
기 소르망의 강의를 들으면서 필자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도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좋은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필자가 듣기에, 그는 가끔은 영어식 발음이 아닌 영어로 발음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해 통찰력 있는 조언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가진 한국에 대한 깊은 지식이나 정보를 보면, 그가 한국에 상당한 애착을 가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