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민주주의 정착에 밑거름 될 터”
김용희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초대 사무총장
세계 120여 개국이 참여한 선거 분야 국제기구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가 공식 출범했다. 지난 10월14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창립총회에는 아시아 26개국, 유럽 28개국, 미주 26개국, 아프리카 36개국, 오세아니아 4개국 등 120개 나라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위원, 사무총장 등 주요 인사 132명을 포함해 58개 국제기구 관계자 총 327명이 참석했다. 사상 첫 국제 선거유관기관 대잔치였다. 이번 총회에서 협의회 사무처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두기로 확정하고, 초대 사무총장을 한국에서 맡으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선거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4년 임기의 A-WEB 사무총장으로 선임된 김용희(57)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을 만나 A-WEB 창립 배경과 향후 활동계획 등을 들어봤다. 김 사무차장은 선관위 선거국장, 정당지원국장, 선거실장 등을 지냈다.
-창설 배경이 궁금하다.
“환경이나 경제 문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확산과 정착도 몇몇 나라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가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그동안 개도국에 많은 원조를 했지만 뚜렷한 효과를 낳지 못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 근본원인은 안정적, 지속가능한 정부를 만들어내지 못한 데 있다. 선거 시스템도 다자기구를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됐다.”
-A-WEB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선 선진국 선거기관들이 선거를 관리하는 과정, 그 절차에서 얻은 노하우를 체계화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일이다.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저개발국가, 민주주의로 이양하는 국가에 선진국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다만 국가마다 고유의 선거문화나 발전과정이 다르므로 그 나라에 맞는 제도를 권하게 될 것이다.”
10월 창립총회, 사무처 송도에 유치
-한국이 사무처 유치뿐 아니라 사무총장까지 맡게 된 배경은?
“우리의 역사발전 과정이 중요한 자산 같다. 국권상실, 전쟁 경험 위에 짧은 시간 안에 민주주의를 이뤄낸 사실에 많은 외국인들이 놀란다. 우리와 같은 과정을 밟기 열망하는 저개발국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저변에 깔려있던 게 아닌가 싶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선거관리 제도에 대한 평가가 좋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산하 EIU가 매년 167개국을 대상으로 선거 민주주의에 대해 평가하는데,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한 25개국에 항상 한국이 포함되고 서열도 미국, 일본 보다 앞서 있다. 특히 선거 투명성, 참여 공정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A-WEB 유치에 어려움은 없었나.
“첫 난관은 중복된 기구가 필요하느냐는 시선이었다. 실제로 유사한 성격의 국제기구가 있다. 지역별 협의회와 개도국 지원사업 하는 UNDP 등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가입해서 얻을 것이 없다는 저항도 있었다. 지역별 협의회가 있지만 글로벌 협의체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고, 국제원조기구가 많이 있지만, 수혜대상 선거기관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기구는 없었다. 선진국에 대해서는 A-WEB이 탄생함으로써 국제원조가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일본이 끝내 불참한 것은 아쉽다.”
-어떤 효과를 가져 올까.
“우선 상징적인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에서 민주주의 전파에 앞장선다면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는 세계인이 인정한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 문화가 함께 격상되어야 한다. 다자간 국제기구 본부를 한국에 두고 저개발국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국가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또 선거 전자장비와 프로그램이 전파되면서 결과적으로 수출, 고용유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새로 출범한 기구가 안착할 수 있도록 재정확보에 힘쓰겠다. 또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가에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전수하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국제참관단을 조직해 참여·평가할 계획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신흥국에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법제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도, 친목모임으로 그칠 수도 있다. 관심 갖고 지켜봐 달라.”
인터뷰는 국내외 선거 관련 얘기로 이어졌다. 김용희 사무총장은 “중앙선관위는 50년 전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출범, 초기 권력 정당성을 추인하는 들러리 기구에 머물다가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각종 선거중립을 위한 실질적 헌법기관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군 상부의 특정후보 투표 강요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던 의로운 장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들려줬다. 속 좁은 권력자들의 위협과 싸우면서 50년을 지켜온 선관위는 의외로 국민과 시민사회 말고는 기댈 구석이 없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김 총장은 “선관위는 멀리 봤을 때 정당과 건전한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온전히 갈 수 있다”면서 “선관위가 집권자의 의도로부터 자유로운 헌법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는데는 국민의 강력한 신뢰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 연장선에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개표 오류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에콰도르의 투표소는 칸막이도 낮고, 투명함이다. 심지어 투표용지가 떨어지면서 퍼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영국은 연인이 와서 투표하는데 애인하고 같이 들어가 상의를 하기도 한다. 누구랑 상의를 하든 결국 그 사람이 투표하는 것이라며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재외 국민투표에서 대리투표를 권장하기도 한다. 두 나라 모두 신뢰가 바탕이 돼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