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자발적 양위 중동 첫 사례’

걸프국 첫 사례…’절대권력 세습일 뿐’ 지적도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61) 카타르 국왕이 25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33) 왕세자에게 왕위를 이양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중동의 아랍 왕정국에서 생존해 있는 국왕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걸프 왕정국에서는 국왕의 타계나 쿠데타로 왕권이 이양됐을 뿐 생전에 자발적으로 양위한 것은 셰이크 하마드 국왕이 처음이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90) 국왕은 2010년과 2011년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술탄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와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의 사망을 지켜봤다.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의 나이도 84세에 달한다.

카타르 역사만 봐도 평화로운 정권 이양은 이번이 처음이다.

셰이크 하마드 국왕 본인도 1995년 부친인 셰이크 칼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의 유럽 순방 중 무혈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2대 국왕인 셰이크 칼리파 국왕도 1972년 궁정 쿠데타로 삼촌이자 초대 국왕인 셰이크 아흐마드 빈 알리 알 타니 국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마드 국왕은 이날 대국민연설에서 이례적인 양위 배경으로 ‘자격 있는’ 젊은 세대를 장려하는 한편 평화로운 세대교체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하마드 국왕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카타르 왕실은 하마드 국왕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기 양위가 2010년 말부터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아랍의 봄’에 대한 카타르 왕실의 대응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카타르는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지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반정부 시위를 적극 지원했고 시리아 반군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카타르 정부는 전날 현지 외교단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양위 일정을 미리 통보하면서 권력 이양 작업을 3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하마드 국왕이 국민들의 개혁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 일부 불만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양위를 결심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 본사를 둔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하마드 국왕의 퇴위에 국민이 아쉬워하면서도 젊은 국왕이 이끌 새로운 시대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발적인 조기 양위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절대 권력의 세습일 뿐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마드 국왕 재위 기간 중동 ‘신흥 맹주’로 부상

하마드 국왕에 대한 일부 부정적 평가에도 18년의 재위 기간 그의 업적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셰이크 하마드 국왕은 1995년 집권 이후 셰이크 하마드 빈 자셈 알 타니 현 총리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 수출과 국부 펀드 등을 바탕으로 카타르를 중동의 맹주 반열에 올려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 시리아 사태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탈레반 평화협상까지 중동 지역의 주요 현안 가운데 카타르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게 거의 없다.

지난 3월 26∼27일 도하에서 열린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서는 일부 회원국의 유보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대표 의석을 반정부 단체에 넘겼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해 2월 시리아 반군 지지를 선언한 것도 하마스의 핵심 자금줄인 카타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후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국왕이 아랍 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가자지구를 방문하기도 했다.

카타르는 동시에 자국에 미국 공군기지를 유치하고 수천명의 미군을 주둔시키는 등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도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이란과도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다.

알자지라 방송과 브루킹스 도하 연구센터는 카타르가 자랑하는 강력한 ‘소프트 파워’ 자산이다.

카타르는 이 같은 실용 외교와 소프트 파워 등을 토대로 미국, 일본 등을 제치고 2022년 월드컵 축구대회까지 유치했다.

다만 ‘아랍의 봄’을 지원하면서도 반정부 시위를 억압하는 바레인 정부의 편을 들고, 미국의 우방이면서도 무슬림형제단·팔레스타인을 전폭 지지하는 카타르의 모순적·실용적인 외교에 일부 서방·걸프국이 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타밈 새 국왕, 개혁·개방 노선 계승 전망

카타르는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자원 수출 실적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총생산 1천846억 달러, 1인당 GDP는 세계 1위인 10만2천800 달러를 기록했다.

약 1천억 달러로 추산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타르 국부 펀드는 영국 런던의 헤로즈 백화점과 프랑스 명품 루이뷔통, 프랑스 축구클럽 PSG(파리 생제르맹 FC)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재정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약속한 대규모 지원 역시 이 같은 국부 펀드가 있기에 가능했다.

셰이크 타밈 새 국왕은 이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부친의 개혁·개방 노선을 이어받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타밈 새 국왕 즉위 이후에도 카타르의 내정과 대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 구성에는 일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카타르 정부는 전날 외교단 브리핑에서 26일 새로 구성한 정부 조직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카타르 정부의 한 관리는 최근 “국왕은 셰이크 타밈 왕세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개각을 통해 젊은 각료를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 온 하마드 총리가 사임하거나 최소한 겸직한 외무장관 자리를 내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셰이크 하마드 국왕은 이날 대국민연설에서 하마드 총리의 진퇴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마드 전 국왕이 어떤 형식으로든 명예직을 맡아 후견인 역할을 계속 할 수 있어 타밈 새 국왕의 권한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유현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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