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모스크바행…미국 ‘갈등’ 불가피
미국, 홍콩·중국·러시아 등 싸잡아 비난
중국도 “미국, 중국기업·언론 해킹” 반격
국제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에드워드 스노든(29)이 23일(현지시간) 홍콩을 떠나 일단 러시아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의 최종 망명지는 현재로는 에콰도르가 유력하다.
스노든을 간첩죄 등으로 기소하고 나서 홍콩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함으로써 그를 송환하려던 미국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신병 확보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곤궁한 처지가 됐다.
그가 머물렀던 홍콩은 물론 이 특별행정구가 속한 중국과 스노든이 제3국으로 향하는 길에 경유한 러시아, 그리고 스노든의 종착지가 될 국가 모두와 미국과의 긴장 관계가 당분간 불가피하게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노든의 족적에 따라 미국이 해당국과 좌충우돌 갈등을 벌이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은 당장 갈등 요인은 사라졌지만 ‘스노든 사태’는 물론 더 나아가 사이버 안보 현안을 둘러싼 불편한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홍콩과 중국이 스노든의 출국을 허용한 데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고 중국은 스노든이 폭로한 자국 기업과 대학에 대한 미국의 사이버 공격을 문제 삼을 태세다.
미국 정치권은 홍콩 당국에 스노든의 미국 여권이 22일자로 무효가 됐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신병 인도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음에도 스노든을 내보냈다고 비난했다.
척 슈머(민주·뉴욕) 상원의원은 “홍콩의 이번 처사는 매우 실망스럽다. 중국이 홍콩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중국의 손이 개입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의 원로 정치인이자 공화당원인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은 스노든을 미국 국가안보에 최악의 피해를 준 반역자라고 규정하면서 중국 스파이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스노든이 중국 영향권에서 벗어남으로써 미국 정부나 기업, 언론사 등을 상대로 한 중국의 해킹 의혹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반격도 한결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초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문제를 한껏 몰아붙일 기세였으나 스노든 사태로 오히려 수세에 몰렸었다.
홍콩과 중국은 일단 스노든이 자국 영토를 떠남으로써 홀가분하다는 입장이다.
홍콩 당국은 성명을 통해 “스노든이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채널을 통해 자발적으로 제3국으로 떠났다. 미국 정부에도 스노든의 출국을 알렸다”고 다소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정부가 스노든에 대한 임시 체포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충분한 증빙 서류가 없어서 그가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해명까지 내놨다.
‘해킹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중국은 반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스노든이 홍콩 유력지에 미국 당국이 중국의 이동통신사와 인터넷망, 칭화대 등 각종 기관을 상대로 광범위한 도·감청과 해킹을 했다고 추가 폭로한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이 사이버 공격의 희생자라는 사실이 다시 입증됐다. 미국 측에 이런 입장과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신화통신도 논평을 통해 미국이야말로 IT 스파이 행위에서 ‘가장 큰 악당’이라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스노든이 홍콩을 떠나 제3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경유지로 삼은 러시아도 미국과의 일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슈머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에 눈엣가시 같은 일이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다. 시리아, 이란 문제에 이어 스노든 문제까지도 그렇다”고 맹비난하고 이번 일이 미국-러시아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러시아에 스노든의 미국 여권이 22일 시효가 만료했다는 점을 통보했다고 밝혔지만 러시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러시아는 스노든을 체포할 계획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밝혔을 뿐 아니라 그가 망명을 원한다면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실장은 스노든에게 망명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스노든이 요청하면 검토하겠다고 확인했다.
시리아 해법을 놓고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이는데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핵 군축안을 푸틴 대통령이 내침으로써 냉랭해진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더욱 싸늘해질 전망이다.
아울러 스노든이 최종 망명지로 유력한 에콰도르로 가거나 베네수엘라 등 어느 국가를 종착지로 삼든 해당국과 미국 간의 관계도 이미 형성된 반목 관계를 넘어 위태위태한 상황을 연출할 것으로 점쳐진다. <연합뉴스/강의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