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총리, “시위대에 테러리스트가 있다”
총리 “시위 즉각 중단하라”…공원개발 강행
주말 대규모 집회 예고·앙카라 긴장 고조
터키의 전국적 반정부 시위가 최근 소강 국면으로 가다 총리의 강경발언으로 다시 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위대가 퇴진을 요구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북아프리카 순방 마지막 날인 6일(현지시간) 튀니지에서 “시위대에 테러리스트가 있다”면서 이스탄불 게지공원 재개발 계획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강경태도를 바꾸지 않아 시위대와 경찰이 다시 격렬한 충돌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주말이 다가오면서 시위대 규모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이스탄불 시위대가 수도 앙카라에 지원하러 간다는 설도 나돌아 앙카라의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총리, 강경입장 고수·외부세력 탓으로 돌려
이번 시위는 11년째 집권한 에르도안 총리의 권위적 통치에 반발하는 성격으로 총리의 발언 하나하나가 사태 악화를 촉발했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 한정됐던 게지공원 재개발 계획 반대 시위는 경찰의 폭력적 진압과 총리의 강경발언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그는 지난 1일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를 하는 대신 시위대를 ‘약탈자’라고 비난했고 외국의 불법단체가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시위 초기 터키의 제도권 언론들이 소극적으로 보도함에 따라 시민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로 상황을 전파하자 에르도안 총리는 “트위터는 사고뭉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총리가 지난 3일 북아프리카 순방에 오른 이후에는 시위와 관련한 발언을 자제해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시위가 이어졌으나 귀국하는 날인 6일에는 강경발언을 쏟아 냈다.
그는 “일찍이 언급한 대로 이번 시위에 일부 테러리스트 단체가 관여했다”며 지난 2월 앙카라의 미국대사관에 폭탄테러를 저지른 집단을 언급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 3일 외부 세력이 국내의 불법 성향 단체와 연계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 당국이 조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무암메르 귤레르 내무장관은 이날 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프랑스인과 이란인, 그리스인, 미국인, 독일인 등 7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지층 의식…아슬아슬 줄타기(?)
총리의 강경한 태도는 그를 11년 동안 굳건히 지지해온 보수 이슬람 계층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AP통신은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를 진정시키려면서도 자신의 지지층에게는 ‘너무 양보만 한다’는 인상을 피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양 진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정치적 외줄타기’를 한다는 것이다.
에르도안 총리가 귀국하는 이스탄불 공항에는 수천명의 지지자가 모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 수백명은 공항으로 시가행진을 하면서 터키 국기를 흔들며 총리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에르도안 총리는 “이번 시위는 민주적 정당성을 잃고 무법천지의 약탈과 파괴행위로 치닫고 있다”며 “시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시위대가 전날 뷸렌트 아른츠 부총리에게 전달한 요구 사항의 핵심인 게지공원 재개발 철회와 관련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하나를 주면 하나를 더 원하게 되는 방식은 있을 수 없다”며 시위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밖에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며 심지어 선진국도 사용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6일(현지시간) 평화적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한다면서 에르도안 총리 측을 강력하게 비판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터키는 오랜기간 유럽연합(EU) 가입을 희망했으나 프랑스를 비롯한 EU회원국의 반발에 번번이 가입 신청이 무산됐다.
프랑스 등은 터키가 여전히 반(反)민주주의 행태와 인권탄압을 일삼는다고 지적해왔다.
◇주말이 고비·시위 중심 앙카라로
에르도안 총리가 터키에 없는 동안 압둘라 귤 대통령과 뷸렌트 아른츠 부총리는 초기 과잉진압의 잘못을 시인하고 부상자에게 사과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그동안 총리가 보여준 행보로 봤을 때 한발 물러서는 발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독선적인 면모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개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에르도안 총리의 이날 기자회견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총리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시위가 일주일째로 접어들면서 시위대의 기반도 청년 중심에서 각계각층으로 퍼지고 있어 이번 주말 시위는 규모 측면에서 최근 10년 만에 최대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터키의 예술가와 연예인, 교수, 변호사, 노동조합 등 다양한 계층이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주장하는 이번 시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이날 시위를 지지하는 글에서 “이 독단적인 정치는 앞으로 정부가 더욱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될 것임을 보여준다”며 “이스탄불 시민의 시위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준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이스탄불에서 시작했으나 반정부 성향으로 발전하면서 시위의 중심은 앙카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스탄불 탁심광장은 지난 1일 경찰이 철수한 이후 별다른 충돌 없이 축제 분위기의 시위가 이어졌으나 앙카라에서는 연일 총리 집무실과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당사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앙카라 경찰은 총리 집무실과 국회, 정의개발당 당사 등으로 들어오는 도로를 원천 봉쇄하고 있어 시위대는 크즐라이광장에서만 집회를 열고 있다.
이번 주말 총리 귀국에 맞춰 이스탄불 시위대가 앙카라로 지원 간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으며 시위대가 총리 집무실 진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어 격렬한 충돌 사태가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김준억 특파원>